[뉴스데스크의 굴욕] 무릎꿇은 9시 자존심 MBC, 42년만에 ‘체급’ 내린다
입력 2012-10-26 18:21
MBC TV ‘뉴스데스크’가 다음 달 5일부터 평일에도 저녁 8시에 방송된다. 42년 동안 지켜온 9시뉴스의 전통을 벗어나 국민의 생활 패턴과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는 뉴스를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평일(월∼목) 뉴스엔 권재홍 배현진 앵커, 주말(금∼일) 뉴스엔 신동호 양승은 앵커가 투입된다. ‘9시뉴스는 MBC 뉴스’라는 인지도를 버리고 8시대로 돌아선 뉴스데스크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2010년 11월 6일. MBC 9시 ‘뉴스데스크’가 사상 최초로 주말(토∼일) 방송 시간대를 8시로 옮겼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MBC의 과감한 실험이었다. 미디어 환경, 국민의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8시 개편의 이유였다.
이때 투입된 앵커가 최일구(52) 배현진(29). 중진급 기자와 다매체 환경에서 성장한 신참 아나운서의 결합이었다. 최 앵커는 우직한 얼굴과 유머러스한 진행으로 이미 알려진 스타급 기자였고, 배 앵커는 빼어난 발성·발음과 흐트러짐 없는 이미지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올 1월 MBC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은 노사 대립의 상징적 인물이 돼 버렸다. 최 앵커는 끝까지 파업에 동참했고, 배 앵커는 소신을 앞세워 파업 대열에서 벗어나 ‘뉴스데스크’ 앵커로 복귀했다. 170일간에 걸친 파업은 끝났으나 최 앵커는 교육 대상자로 분류돼 데스크에 앉지 못했다. ‘공정방송’에 대한 열망이 다르게 표출되면서 길도 달라진 것이다. 두 사람은 MBC ‘뉴스데스크’의 속사정을 대변하기도 한다.
사실 뉴스데스크의 성쇠 과정에는 언론의 본질, 지배 구조를 둘러싼 정치적 다툼, 미디어 환경의 변화, 노사의 갈등, 내부 구성원의 자세 등이 두루 작용한다. 결론은 MBC 뉴스데스크가 급작스런 쇠락의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 쇠퇴의 지표는 시청률이다. 뉴스가 시청률의 높고 낮음이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으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데이터임에 분명하다. 대개의 미디어리서치 회사들은 뉴스데스크의 시청률 하락이 본격화된 것을 최근 1∼2년 남짓으로 잡고 있다. 노조 파업이 있기 전 MBC 김재철 사장 퇴임 요구로 모아지는 공정방송을 둘러싼 갈등이 시청률 하락이라는 수치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미디어리서치가 2011년 9월∼2012년 8월 사이 조사한 ‘’지상파 방송사별 메인뉴스 평균시청률 현황’에 따르면 MBC는 2008년 10.1% 시청률이 이 기간 동안 평균 7.9%로 떨어졌다. KBS는 19.1%에서 18.5%로 소폭 하락했고, SBS는 9.3%에서 11.3%로 상승했다. 뉴스를 접하는 매체 폭이 넓어지면서 지상파 뉴스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라고는 하나 10%대 이하의 뉴스데스크 시청률 낙폭은 우려 수준이라는 평이다.
최근 조사에서도 그 우려는 불식되지 않고 있다. 지난 23일 평일 지상파 전체 프로그램 일일시청률 조사(AGB닐슨)를 살펴보면 KBS, SBS 뉴스들은 순위를 공개하는 20위 안에 들어 있다. KBS 9시뉴스(2위·전국시청률 24.1%), KBS 뉴스7(9위·12.2%), SBS 8시뉴스(11위·10.7%), KBS 뉴스광장 2부(13위·9.9%) 등이다. MBC는 뉴스데스크(5.9%)를 포함해 한 개도 들지 못했다. 전체 1위는 KBS 1TV 일일연속극 ‘별도 달도 따줄게’(29.2%)였다. MBC가 평일 8시뉴스로 확정하기 직전인 지난 14일의 경우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4.6%였고 SBS 8시뉴스는 11.5%였다. 21일에는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3.4%까지 내려앉았다.
이 심각성을 깨달은 MBC가 8시뉴스로 조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MBC 관계자는 최일구·배현진 앵커가 투입됐던 2010년 주말 뉴스 개편 사례를 들며 “개편 전 8.3%였던 주말 시청률이 10.5%로 올랐다”며 “개편 시간대 전체 시청률도 5.9%에서 6.7%로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개편을 통해 시청률을 반등시켜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전략이다. 외국 사례로는 영국 BBC가 저녁 9시 뉴스를 10시대로 옮겨 상업방송 ITV 뉴스와 맞붙었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언론학자들은 뉴스데스크 추락의 원인을 공정성 하락으로 꼽고 있다. 지난 2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뉴스데스크의 ‘안철수 논문 표절 의혹’ 보도에 대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배했다며 법정 제재인 ‘경고’ 조치를 한 사례 등을 종합하면 언론의 본질을 외면한 보도 행태가 계속 이어져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
이달 초 더플랜코리아가 성인 남녀 10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9.6%가 ‘MBC 뉴스보도가 편향적’이라고 답했다. 시사잡지 시사IN이 조사한 ‘지난 5년간 언론매체 신뢰도 추이’에 따르면 MBC의 경우 2007년 25%대의 신뢰도에서 2012년 6.9%로 떨어진 것 등이 공정성 하락의 지표다. 즉 시청자들에게 신뢰를 잃음으로써 뉴스데스크는 방송 주요 3사 뉴스 중 최하위를 기록한다는 설명이다.
◎ Key Word - MBC 뉴스데스크
1970년 10월 5일 시작한 지상파 전체 최장수 프로그램. 1980∼90년대 매체 파워를 바탕으로 ‘9시뉴스’라는 고유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80년대 말 40%대 시청률을 유지하며 당시 일일 프로그램 중 최고를 기록했다. 최대 사고는 88년 8월 한 청년이 생방송 중인 스튜디오에 몰래 들어가 “내 귓속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한 방송사고. 주요 스타 앵커로는 80년대 이득렬 강성구, 90년대 엄기영 정동영 손석희 백지연, 2000년대 신경민 최일구 김주하 등.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