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교회가 있었네-명업교회] 남성 찬양대는 왜 감동적일까… 찬송이 나의 신앙 고백이니까
입력 2012-10-26 18:41
강원도 홍천군 구불구불한 산길에 들어서자 붉게 물든 단풍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황량한 논밭을 적시고 있었고 안개가 피어오르는 깊은 골에서는 낙엽 내음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고즈넉한 산골 풍경을 가리고 있는 펜션과 모텔 행렬에 슬슬 눈이 피로해질 때쯤 유럽의 작은 교회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시골교회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남성찬양대가 이끄는 시골교회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지난 22일 찾아간 홍천군 굴업리 명업교회에선 남성찬양대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교회 앞마당까지 퍼져 나오는 찬양은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과 어우러져 특별한 느낌을 풍겼다.
명업교회는 다른 시골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남성찬양대가 주축이었다. 아내에게 등 떠밀려 교회에 나오게 된 남성 교인들이 적지 않았지만 어느새 아내보다 믿음이 더 깊어져 교회 일에 적극 나서게 된 것. 남성 찬양대는 전체 남성 성도 40여명 중 연세 많은 어르신을 뺀 50∼60대의 3분의 1 정도인 8명으로 구성돼 있다. 별도의 지휘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피아노 반주에 맞춰 매주 수요 예배 전에 1시간 정도 연습을 한다.
남성찬양대의 리허설을 지켜보던 용미순(47·여) 집사는 “시골에서 죽 자라서 농사밖에 모르던 남편이 사람들 앞에 나서 찬양을 하는 것 자체가 감동”이라며 “남편이 수요예배 때 ‘하나님 앞에 올릴 찬송은…’이라고 소개하는 걸 보면서 눈물이 났었다”고 말했다.
용 집사의 남편은 ‘찬양대장’ 권효중(56) 집사다. 권 집사는 아내의 끈질긴 권유로 믿음을 갖게 됐다. 권 집사는 “벼농사뿐 아니라 오이 땅콩 고구마 옥수수까지 재배하느라 시간이 많지 않지만 교회 일에는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며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께 의지가 되고 마음도 편해진다”고 했다.
권 집사의 신앙 고백으로 다소 차분해진 분위기를 바꾼 건 신덕수(49) 집사였다.
교회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신 집사는 “일 때문에 나는 오늘 좀 일찍 가야 하는데…”라며 슬쩍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한 성도가 “전도부장이 어디 도망가려고 하느냐”고 하자 주변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다들 바쁘신 데도 열정적으로 참여해주셔서 고맙지만 종종 연습 때 빠지는 분이 있어서 좀 아쉽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는 신 집사에게 믿음을 갖게 된 계기를 물었다. 그 역시 아내의 기도 덕분이라고 했다. “술에 빠져 있던 시절 와이프가 수없이 교회에 좀 나오라고 했는데도 잘 되지 않아서 언성이 높아진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새벽예배에 한 번 참석하고는 생각을 고쳤어요. 하나님 말씀을 전해 듣고 지금까지 제멋대로 살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술도 끊고 전도부장까지 맡았어요.”
남성찬양대는 첫 순서부터 감동을 자아냈다. 지난해 6월 구성된 남성찬양대가 수요예배 때 찬양을 시작하자마자 예배당 여기저기에서 ‘아멘’이 터져 나왔다. 몇몇 대원은 음이 이탈되거나 제 박자를 찾지 못해 제대로 된 화음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성도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찬양은 마치 남성찬양대 구성원들 각자의 신앙 고백을 한꺼번에 전해 듣는 것 같은 큰 울림이 있었다고 한다. 오세선 목사는 “여성 성도들이 박수를 치고 휴대전화로 남편 사진을 찍고, 분위기가 정말 좋다”며 “담임목사가 설교할 때에도 이 정도로 반응이 좋지는 않았는데…”라면서 웃었다.
성서학당 ‘말씀 공부’로 시작된 변화
마을 주민들은 십수년 전부터 교회 인근에 대형 리조트와 골프장 등이 들어서면서 더 바빠졌다. 옥수수, 감자 재배와 벼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던 이들이 민박집, 음식점 운영을 병행하거나 콘도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게 된 것. 이런 이유로 명업교회는 오후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 일터로 돌아가기 바쁜 성도들을 붙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 목사는 고심 끝에 지난해 성서학당을 열었다. 성서학당은 봄, 가을 월요일 또는 화요일 저녁 7시30분부터 성도들을 교육관에 모이도록 해 1시간30분 동안 성경말씀을 풀이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과 겨울에는 휴강을 했고,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수강신청서도 받았다.
처음 20여명이 강의를 들었고 이후 차츰 수강생이 늘어났다. 강의 주제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예배란 무엇인가’ ‘고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영적 전쟁’ 등 학생들(?)의 반응을 살펴 진도를 맞춰나갔다.
오 목사는 강의 도중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신변잡기를 풀어놓지 않았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전에 충실하게 성경말씀을 전하고 온전히 그 의미를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이목을 끌기 위해 이런저런 우스운 이야기나 예화를 늘어놓으면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시간은 쥐꼬리만큼도 안 된다”며 “심령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살아 있는 말씀인 만큼 성경 본문을 풀어내는 데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성서학당의 열기는 점차 뜨거워졌다. 조형호(62) 집사는 “전에는 성경책만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무늬만 교인’이었는데 성서학당에서 주님 말씀을 공부한 뒤 믿음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고 했다. 조 집사는 갑자기 눈물을 삼키면서 말을 이었다. “열심히 나는 살았는데도 주변 환경 때문에 사업도 실패하고 잘못됐구나, 늘 남의 탓을 했어요. 그러니까 자주 격분하게 됐는데 이제는 차분해졌어요. 결국 내가 집을 나간 탕자였는데 그걸 몰랐던 거예요. 하나님이 저를 이제야 받아주셨고 새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임희재(57) 집사는 “서울에서 큰 교회에 다닐 때에는 성경책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던 때가 많았는데 시골에서 조용히 설교를 듣고 묵상하다 보니 깨닫는 게 많았다”고 했다. 그는 건강에 이상이 생겨 3년 전 이 지역에 정착했다.
도움 받던 교회서 나눠주는 교회로 성장
명업교회는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굴업리의 ‘업’자(字)와 교회 맞은편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명성리의 ‘명’자를 따서 이름이 지어졌다.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50∼60가구였던 마을 규모가 100가구 이상으로 불어났지만 성도 수는 쉽게 늘지 않았다.
오 목사가 부임한 2008년 6월 성도는 12명뿐이었다. 대부분 할머니 성도들이었다. 그나마 성도 간 사소한 말다툼으로 어르신 2명이 교회를 떠났다. 젊은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춘천이나 서울 등 도시로 떠나버렸다. 1967년 7월 개척 초기에는 100명 넘는 주민들이 교회에 출석했지만 이후 급격하게 성도 수가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교회 재정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2003년 시작된 예배당 공사는 비용 부족으로 중단된 상태였다. 한겨울에 난방도 제대로 안되는 텅 빈 교육관에서 오 목사는 방한복을 껴입고 새벽기도를 해야 했다.
오 목사는 청년 시절 자신이 다녔던 서울의 한 교회에 찾아가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별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는 “오죽했으면 내가 젊은 시절 냈던 건축헌금을 돌려 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어려웠다”고 했다. 오 목사는 공사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건축업을 했던 기노일(64) 안수집사와 함께 벽돌을 나르고 삽질을 해 간신히 공사를 마무리했다.
마음을 닫았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교회로 나오게 된 데는 ‘식탁 교제’의 공이 컸다. 오 목사는 주민들에게 삼겹살로 저녁을 대접하기도 하고 직접 집으로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복음을 전했다. 귀중한 성경말씀을 전하겠다며 끊임없이 주민들에게 다가선 오 목사의 진심이 전해진 것. 오현주(59·여) 권사는 “억지로 흥미로운 얘기를 꺼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 데 열을 올리신 목사님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성도 수는 10명에서 70여명으로 서서히 늘어났고 예배당 건축 과정에서 지게 된 빚도 모두 갚은 명업교회는 지난해 자립을 선언했다. 명업교회는 이후 서울의 한 미자립 개척교회와 북한선교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네팔과 미얀마에서 우리나라로 유학을 온 전도사 2명의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오 목사는 “네팔과 미얀마 유학생이 각각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현지에 예배당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업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출발하면 2시간이 좀 더 걸린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설악IC에서 나와 설악IC 교차로에서 ‘홍천, 설악면사무소’ 방면으로 진입한다. 설악면사무소 앞에서 우회전 해 86번 국도를 타고 11㎞쯤 가다가 다시 우회전한다. 설밀길을 타고가다 모곡2교 앞 교차로에서 우회전, 494번 지방도로로 들어간다. 이어 ‘홍천, 양덕원’ 방면 70번 국도를 타고 5㎞쯤 이동한 뒤 좌회전, 안굴업길을 100m쯤 따라가다 우회전하면 좌측에 교회가 보인다.
홍천=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