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백소영] ‘사람 국화’의 향기
입력 2012-10-26 18:29
국화향이 가득한 가을입니다. 어느 꽃향기가 아름답지 않겠습니까만, 저는 유난히 가을 국화향기를 좋아합니다. 오래도록 한결같고 멀리까지 퍼지는 그 향기가 좋아 가을에는 국화꽃 만발한 곳을 찾게 되더군요. 그러다 오늘 전 그 어느 국화향보다 아름다운 ‘사람 국화’의 향내에 취해버렸습니다. 조병국 선생님! 빛날 ‘병’에 국화 ‘국’자를 쓰신다 했으니 ‘빛을 내는 국화’라는 이름뜻을 가지신 분!
“유아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요.” 당시로서는 드물게 의대에 진학하려는 여학생에게 교수님들이 지원동기를 물으셨을 때 그리 답하셨다 합니다. 전쟁을 겪으며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아프게 스러지는 모습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았던 철든 소녀의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50년 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며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제가 낳은 아기를 버렸겠냐고 도망치듯 사라진 엄마의 건강마저 걱정하는 이 마음 착한 할머니 의사선생님은, 홀로 남겨진 아기들의 진찰기록에 ‘버려진 게’ 아니고 ‘발견된 것’이라고 적고 계시더군요.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을 오롯이 담아서요. 살려내려 간절히 애썼지만 끝내 손끝에서 놓쳐버린 아기들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며 그 이름 하나 하나를 잊지 않으려 하신답니다.
힐링, 시대의 키워드죠. 의사에겐 평생의 의무일 터이구요. 이 가을에 지면을 통해 만난 ‘사람 국화’의 은은하고 한결같은 향기에 취해 저는 아픈 어린이가 아닌데도 할머니 의사선생님의 손길이 닿은 양 그렇게 치유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큰 의사는 병만 고치지 않고 사람을, 나라를 고친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그 손에서 살아나 역시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된 한 입양아는 자기가 낳은 아기의 이름에 선생님의 이름자를 넣었다 합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절대절명의 큰 뜻은…그 손을 거쳐 간 아이의 아이를 통해, 그리고 이렇게 한 번 뵙지도 못했지만 영혼의 생명을 살리겠노라 다짐하며 강단에 서는 어설픈 선생의 결심을 통해….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