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파도를 밟고 오신 예수님

입력 2012-10-26 17:55


요한복음 6장 16~21절

독일의 공산주의 이론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민중이 현세에서 겪는 고통을 잊게 하고 내세의 환상으로 도피하게끔 하는 아편과도 같은 것으로 종교를 폄하한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마르크스가 말한 종교는 기독교를 지칭합니다. 이는 현실의 필요와 가난을 무시하고 현실과 아무런 관계없는 ‘딴 세상에서의 보상’을 이야기함으로써 현실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잊어버리게 하고, 현실의 가난과 고통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지배계급에 감히 도전하지 못하도록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도구로 기독교를 이해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같은 사상을 기반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현실을 분리시킴으로서 기독교를 현실과 유리된, 뜬구름 잡는 이론으로 만드는 세력이 있습니다. 기독교를 현실과 무관한데다 현실에 실제적인 영향력을 전혀 미치지 못하는, 그야말로 일개 ‘종교’로 전락시키려는 기독교 파괴 세력들이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역사적 현실을 분리시키고, 하나님을 그냥 하늘로 돌려보내버리면서 이 땅을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하는 사탄의 세기말적인 계략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강력하게 대응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서 주장하는 대로 과연 기독교의 복음이 사람들의 고난과 배고픔, 눈물, 고통, 한(恨)을 무시하고 현실과 전혀 관계없는 ‘천국의 보상’을 말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복음 1:21)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누가복음 4:18-19)

타락과 부패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문제가 현실과 관계없는 문제입니까? 가난한 자에게 부유하게 될 것이라는 복된 소식,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현실과 관계없는 이야기입니까? 온갖 가난과 절망과 저주의 포로가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해방시키는 문제가 현실과 관계없는 것입니까? 눈먼 사람들에게 밝은 빛을 볼 수 있게 하고, 현실의 압제와 포학에 눌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눠주는 것이 현실과 관계없는 문제입니까?

이런 문제들은 오히려 너무나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문제들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가난과 굶주림, 질병과 죽음, 고난과 절망, 눈물과 통한, 죄악 등 인간 생존의 모든 절박한 문제들을 온몸으로 끌어안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주기도문에서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현실에서도 그대로 이뤄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의 현실’을 품어 안으시고 풀어주고 열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젖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파도를 밟고 오신 예수님의 모습은 바로 제자들의 절박한 현실로 뚜벅뚜벅 걸어들어 오셔서 살길을 열어주시는 우리 모두의 생명주의 모습입니다.

박재우 목사(문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