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소설이 다룬 우리 삶 깊이 공감”… 박경리문학상 수상한 러 작가 울리츠카야 내한
입력 2012-10-25 19:35
“러시아어로 번역된 소설가 박경리의 ‘김약국집 딸들’을 읽어봤어요.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어요. 인간의 본질, 마음 깊은 곳의 문제는 똑같다는 걸 확인했지요. 게다가 문화적 접촉이 그리 많지 않은 먼 나라 한국에서 제 소설이 상을 받다니 놀랐어요.”
제2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러시아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69)가 25일 처음으로 방한해 서울 정동에서 회견을 가졌다. 울리츠카야는 40세 때 중편 ‘소네치카’(1992·비채 펴냄)로 주목받은 뒤 국내외 주요 문학상을 휩쓴 작가로 러시아 현대문학을 대표한다. “어느 곳에서, 어느 시대를 살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 소설을 읽은 독자가 삶에 대한 위안이나 해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943년 우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유전공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브레즈네프 시대에 ‘사미즈다트’(지하출판물)를 보급했다는 이유로 제명당한 후 절치부심 끝에 문단에 데뷔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당시 연구원 5명이 함께 제명당했고 연구소는 아예 폐쇄됐지요. 수용소에 갇히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어요.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이뤄져 있는가에 관심이 있어 생물학을 공부했는데 작가가 되고서도 인간의 내면이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 관심을 가졌지요.”
못생긴 외모의 책벌레 소네치카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로베르트 빅토로비치 사이의 사랑과 헌신, 배신과 화해를 그린 수상작 ‘소네치카’는 소비에트 시절 이전에 살았던 작가 주변의 많은 할머니의 삶을 원형으로 하고 있다. “사춘기 이후부터 내 또래보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과 친했어요. 그분들은 이전 시대로부터 내려온 러시아 전통의 있는 그대로를 살아온 ‘스미네니예(순명)’의 소유자였는데 그런 정서는 소비에트 시대엔 찾기 어려웠지요.”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순명’을 바탕으로 한 가족의 복원을 화두로 던진다. “사회적 문제에 천착하는 작가도 많죠. 하지만 나는 개인이 가진 영혼, 감정 그런 것에 집중합니다. ‘소네치카’에서 여주인공이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고, 나이가 어린 외도 상대를 딸처럼 받아들일 정도로 관용을 베푸는 여성으로 그려지자 페미니스트들이 들고일어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제 소설은 여성이 남성을 상대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동반의 관계를 맺는 여성주의를 지지합니다.”
시상식은 박경리문학제 기간인 27일 강원도 원주 백운아트홀에서 열리며 상금은 1억5000만원이다. 국내에 소개된 울리츠카야 작품으로는 ‘소네치카’, ‘쿠코츠키의 경우’(들녘 펴냄)가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