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공탁금-이제는 돌려 받아야 한다] 日·美 정치적 이해 따라 ‘개인배상’ 오락가락 끝 무산

입력 2012-10-25 21:39

4회 : 잡아뗀 日, 방조한 美-전후 6년의 잘못이 60년 미해결로 남았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미군 공식문서와 일본 자료 분석 결과 일본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무자들의 배상문제는 일본 정부와 승전국인 미국 측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밀려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

1945년 8월 일본 패망 직후 조선인 노무자들은 속속 귀국길에 올랐고 이로 인한 노동력 이탈이 일본의 사회문제로 비화됐다. 당시 일본 현지 언론이 조선인 탄광 노무자의 귀한으로 출탄율이 줄어 우려스럽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이들을 붙잡으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은 ‘조선인 노무자가 일본인보다 중노동에 능하고 연합군에 덜 적대적일 것’이라는 미국 측의 판단과도 맞아떨어졌다. 연합군총사령부(GHQ)는 1945년 10월 조선인 미지급 임금의 본국 송금 허용을 제안하며 신경을 썼다. 하지만 조선인 노무자들이 체불 임금을 요구하며 일본인과 갈등을 빚자 이들의 송환을 서둘렀다. 1946년 1월 조선인의 본국 송환 절차는 마무리됐지만 임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GHQ는 1946년 3월 일본 기업들로 하여금 GHQ 자체 관리 계정으로 미지불 임금을 입금하라고 지시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자체적으로 계좌를 만들어 미지불 임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소련의 등장으로 동아시아에 냉전 분위기가 번지면서 상황은 또 달라졌다. 1947년 8월 연합군극동위원회(FEC)는 ‘연합군 승전국 일원에만 배상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은 승전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빠졌다. 1949년 6월 GHQ는 외국인 채권자에 대한 예금계정을 도쿄은행에 만들도록 했고 흩어져있던 조선인 노무자 임금도 합쳐졌다.

1950년 6·25전쟁 발발로 문제는 더욱 꼬였다. 공산국가인 북한 거주자에게 전달하는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듬해 9월에는 GHQ 관리 계정이 일본 정부에 넘어갔다. 이후 이 문제는 국가 간 전쟁 배상 문제로 다뤄지게 됐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계기로 개인 배상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특별취재팀=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