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공탁금-이제는 돌려 받아야 한다] 공탁금 수령, 美군정이 거부했다

입력 2012-10-25 21:46

4회 : 잡아뗀 日, 방조한 美-전후 6년의 잘못이 60년 미해결로 남았다

해방 직후 GHQ 지시로 日 홋카이도 전범기업들 619억 예치

미군정이 1945년 해방 직후 전범기업들이 조선인 노무자들의 임금 몫으로 일본 은행에 예치한 공탁금의 수령을 거부한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임금 채권을 포기한 미군정의 이 같은 결정으로 67년 동안 손해배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미국 메릴랜드주 국립문서보관소의 미군 공식문서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일본주둔 연합군총사령부(GHQ)는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 일본 전범기업에 의해 홋카이도 탄광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들의 미지급 임금을 조사해 이에 해당하는 돈을 도쿄은행에 공탁토록 일본 정부에 지시했다.

GHQ는 이어 남한에 설치된 미군정에 “조선인 노무자 몫의 공탁금을 넘길 테니 해당 노무자에게 나눠주라”고 지시했다. 당시 일본을 점령한 GHQ는 패전 일본뿐만 아니라 남한 내 미군정의 신탁통치도 총지휘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노무자 인적 사항을 확인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내세워 공탁금 수령을 거부했다.

1945∼46년 미8군 74사단은 홋카이도의 비바이, 아키바라, 유바리 등 전범기업 소유 탄광에 근무하던 조선인 노무자들이 지급받지 못한 임금 260만엔(현 시가로 한화 618억8000만원)을 확인해 GHQ 내 재무담당 부서 계좌에 입금했다. 1946년 5월 GHQ는 이를 남한 미군정에 통보했고 조선인 노무자에게 지급할 구체적 방법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수차례 서울을 방문한 GHQ 대표와 이 문제를 협의하다 1947년 돌연 공탁금 수령 거부를 결정했다. 같은 해 9월 22일 작성된 GHQ 문서에는 ‘전년도부터 서울 미군정과 공탁금 분배를 논의했고 노무자 개개인의 인적사항이 확인될 때까지 미군정이 이를 보관키로 했다. 하지만 (미군정이) 인적사항 확인이 곤란하다며 공탁금 인수를 거부했다’고 적혀 있다.

74사단은 홋카이도 탄광 조사 과정에서 60% 이상의 전범기업 노무자가 월 300엔 이상의 급여를 받은 사실을 GHQ에 보고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2010년 우리 정부에 보낸 ‘조선인 노무자 공탁기록’에 나타난 1인당 임금은 턱없이 낮은 ‘117엔’이었다.

또 GHQ 기록에는 ‘노무자 미지급 임금을 모두 찾아내 한꺼번에 예치한 홋카이도 사례를 일본 내 모든 전범기업 작업장에 적용하려고 했지만 이들 기업이 돈을 여러 은행으로 쪼개 예치하는 바람에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내용도 나온다.

특별취재팀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