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100원 붕괴] 수출기업 줄줄이 환차손… 한국경제 성장엔진 경고등
입력 2012-10-25 18:51
원·달러 환율 1100선이 깨지는 등 환율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가뜩이나 불황에 직면한 국내 수출 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미 상당수 수출기업이 최근 환율 하락으로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된 가운데 단기적이라도 하락폭이 크거나 하락세가 장기화된다면 수출기업들의 추가 타격이 불가피하다.
2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160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은 환율하락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 없어 답답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하락에 대한 대비책으로 30.2%가 ‘허리띠 졸라매기식의 원가절감’을 꼽았고,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응답도 25.9%나 됐다. 이어 ‘환헤지 등의 재무적 대응’(21.6%), 수출시장 다변화 및 해외마케팅 강화(8.6%) 등으로 조사됐다.
이미 환율하락으로 피해를 본 기업들은 52.6%에 달했고, 피해 유형으로는 ‘기존 수출계약 물량에 대한 환차손 발생’(49.6%)이 가장 많았다. 이어 ‘원화 환산 수출액 감소에 따른 채산성 악화’(31%), ‘수출단가 상승에 의한 가격경쟁력 약화’(17.7%) 등의 순이었다.
향후 환율 전망에 대해 수출기업들은 올해 말 1083원, 내년 상반기에는 1088원 정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 마진 확보를 위한 마지노선으로는 1080원이 제시됐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와 수출 경쟁을 벌이는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도 동반 강세를 나타내고 있어 당장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지는 않는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이 채산성 및 가격경쟁력 악화를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환율 국면이 장기화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전자와 자동차 등 수출 업종에서는 위기감이 더 높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은 165조원으로 이 중 해외 매출 비중은 73.5%다. 이처럼 높은 해외 비중으로 삼성전자는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연간 영업이익이 3000억원 감소한다는 게 민간경제연구소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100원 하락하면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 수준인 3조원이 증발하는 셈이다. 현대·기아차 역시 10원 하락에 영업이익이 2000억원 주는 것으로 추산된다.
제조업 경기에 따라가는 해운업계나 조선업계의 불안감은 더 크다. 특히 원화 강세는 중국과 일본 업체의 수주경쟁에서 우리 업체들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원·달러 환율 하락은 수입 자본재 가격 하락을 유도해 기업의 설비투자 확대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채산성이 악화되면 투자 역시 둔화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다만 원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항공업계는 환율 하락이 유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출기업들은 환율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경영계획을 수립하는 등 저환율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단기적인 대응보다는 근본 경쟁력을 강화, 대외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체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늘어난 현지공장에 힘입어 급격한 환율 변동에 따른 타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생산 수출분(30%)만 환차손에 대한 타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급격한 환율 하락에 대비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과 함께 기업 역시 수출다변화, 신제품 개발 등 환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