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루소는 왜 40대 중반에 연애소설을 썼나

입력 2012-10-25 18:14


신엘로이즈1·2/장 자크 루소/책세상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너무나 다채로운 면모를 가진 천재이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사회학의 방법을 모색했고, ‘사회계약론’을 통해 주권재민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의를 천명했으며 ‘고백록’을 통해 근대적 의미의 자서전이라는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그러나 루소는 무엇보다도 소설 ‘신엘로이즈’(1761)를 통해 문학적 정점에 이른다. 루소의 다른 글들이 일부 식자층에서 읽혔다면 이 소설은 매우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면서 18세기 말까지 불법 복사본을 포함, 최소한 100종의 ‘신엘로이즈’가 등장할 정도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신엘로이즈’는 서간체 형식의 글이다. 앞서 신학자인 아벨라르와 그의 아내 엘로이즈 사이에 오간 편지를 묶은 ‘두 연인의 편지’(1687)를 읽은 루소가 ‘신엘로이즈’를 구상한 것은 후원자인 데피네 부인이 마련해 준 몽모랑시(市)의 숲 속 집 ‘레르미타주’로 이사한 1756년의 일이다. 6월의 어느 날, 몽상에 빠져 있던 루소는 지난날 자신의 삶에 등장했던 여러 여성들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갑작스런 도취상태에 이른다. 사랑과 우정의 정체에 대해 막연하게 구상만 하고 있던 그는 그 순간 정열과 그리움이 넘쳐나는 편지 형식의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쥘리, 나는 지금 내가 처한 궁지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단 한 가지밖에 알지 못합니다. 나를 이 궁지에 빠뜨린 손길이 이 궁지에서 나를 끌어내어 주는 것이 그것입니다. 내 죄와 고통은 당신에게서 기인하는 것이니 어쨌든 부디 내가 당신을 보지 않게 해주세요. 내 편지를 당신 부모님께 보여드리세요. 당신 집의 대문을 내게 열어주지 못하게 하세요. 제발 나를 쫓아버리세요.”(‘편지 1’에서)

이미 사랑할 때가 지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마흔네 살의 루소는 그러나 여주인공 쥘리를 등장시킨 이 고백의 문체를 통해 다시 한번 사랑에 넋이 나가 버린다. 루소는 사랑할 때 일어나는 모든 감정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시인하지만 그 환상이야말로 인간을 가치의 세계로 고양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설파했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 끌려 18세기의 독자들은 자신을 작품 속 주인공들과 동일시하면서 소설에 빨려들어 갔다. ‘신엘로이즈’의 성공으로 인해 질서, 이성, 형식이라는 고전적인 양식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니, 이 모든 게 낭만주의의 선구자인 루소 덕분이었다. 김중현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