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TV토론
입력 2012-10-25 18:41
대통령 후보 TV토론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1930년대부터 보급된 TV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산층 가정에 급속히 확산됐고, 10년도 못 돼 여론형성의 주요 매체로 떠올랐다. 미국 방송사 CBS는 이런 분위기를 재빠르게 포착해 1960년 9월 26일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과 민주당의 존 F 케네디를 시카고 스튜디오로 불렀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TV토론은 대히트였다. 당시 미국인 1억7900만명 중 6600만명이 지켜봤다. 선거결과에도 영향을 줬다. 지지율에서 뒤졌던 케네디는 역전에 성공했다. 닉슨은 무릎이 아파 수시로 얼굴을 찡그렸고, 얼굴에 흐르는 땀은 공들인 화장을 범벅으로 만들었다. 반면 케네디는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감을 뽐냈다. 로널드 레이건이 완성하고 빌 클린턴이 톡톡히 덕을 본 이미지 정치의 출발점이었다. 닉슨의 차분한 논리는 라디오 청취자에게 호감을 줬지만 TV 시청자에게는 소용없었다. 그는 68년과 72년 선거에서 TV토론을 아예 거부했다.
76년에는 공화당 제럴드 포드 후보의 TV토론 중 실언이 문제였다. 질문자가 미·소 냉전관계를 설명해 달라고 했을 때 포드는 “동유럽에서 소련의 지배는 없다”고 엉뚱하게 대답했다. 나중에 소련이 동유럽을 지배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지만 유권자들은 외교안보에 취약한 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지난 22일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TV토론에서 “시리아는 이란이 바다로 나가는 통로”라고 말해 난리가 난 데도 이런 배경이 있다. 시리아와 이란 사이에 이라크가 있다는 점을 간과한 상식부족이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TV토론에서 포드의 실언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대선 후보 TV토론은 97년에 열렸다. 92년 관훈클럽이 후보들을 한 명씩 불러 개최한 토론회가 녹화 중계됐지만 후보들을 한데 모아 생중계로 토론케 한 것은 처음이었다. 관광버스로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바람몰이 정치를 없애리라는 기대 속에 시청률은 53.2%를 기록했다. 하지만 후보들이 서로 질문을 하지 못하는 방식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일대일 질문이 일부 허용되는 등 개선이 있었지만 지난 대선 때까지도 후보들 사이의 치열한 공방을 끌어내지 못했다. 시청률도 2002년 34.2%, 2007년 21.7%로 떨어졌다. 18대 대선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후보들 사이에 TV토론 진행방식을 두고 신경전이 치열하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토론을 기대한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