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용호] 네거티브와 정치 양극화

입력 2012-10-25 18:41


한국과 미국 대통령 선거운동 양상이 너무 비슷하다. 두 나라의 역사, 제도의 차이가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양국 후보들이 모두 미래에 대한 얘기보다 상대방의 과거에 관한 네거티브 캠페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의 경우 박근혜 후보의 정수장학회 문제, 문재인 후보의 노무현 정부시절 NLL(서해 북방한계선) 인식과 정부기록 폐기 의혹, 안철수 후보의 안랩 주가 조작 의혹 등을 놓고 흠집내기에 급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의 롬니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이 특이하고 이상한 정치신념(‘유럽스타일의 사회민주주의’)을 가지고 있고, 경제를 회생시킬 능력이 없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롬니 후보의 아메리칸 드림이 고작 인도에 콜센터를 세우고 세금면제를 받으려고 카리비안(Caribbean) 연안 국가로 회사(롬니의 베인 캐피털 투자회사를 지칭)를 옮기는 것이냐고 비아냥거리면서 비난 광고에 ‘무엇을 숨기려 하는가’라는 구호를 사용하고 있다. 네거티브 광고가 2008년 대선에서는 8.6%였으나 이번에는 52.5%로 늘어났다.

이렇게 네거티브 캠페인이 양국에서 극성을 부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용은 다르지만 두 나라 정치가 모두 양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2002년 대선 이후 보수-진보 진영들이 서로 상대방을 파멸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보수는 진보가 대한민국을 북한에 팔아넘기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고, 진보는 보수가 나라를 망친 세력으로 본다. 한편 미국의 경우 보수는 진보가 미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려고 한다고 비난을 하고 있고, 진보는 보수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진보와 보수는 낙태와 동성결혼 허용 여부를 두고 ‘문화전쟁(culture war)’을 치르고 있다.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이 공화당을 완전 장악하는 바람에 동성결혼과 낙태를 무조건 반대하지 않으면 공화당원이 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과거 진보 내지 중도 성향의 롬니후보도 집토끼를 잡기 위해 지속적으로 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다. 자신이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 도입한 의료보험제도는 오바마의 의료보험제도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당선되면 후자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과거 미국 의회 의원들은 당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자유투표(cross-voting)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나 이제 우리나라처럼 정당투표(partisan voting)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양당간의 타협이 매우 어렵다. 예를 들면 오바마가 제안한 경제회생 입법안에 공화당 하원의원이 1명도 찬성하지 않았다. 미국의회의 ‘한국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언론마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그리고 필요에 따라 왜곡해 제공하기 때문에 미국은 가장 분열되고 파당적인 사회가 되었다. 예를 들면 폭스TV와 월스트리트저널은 오바마를 “사회주의자”로 비난하고 있다. 더욱이 시민들 간에는 공화당 성향의 ‘티 파티(Tea Party) 운동’과 민주당 성향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the Wall Street)’가 충돌하고 있다.

양국의 대선후보들이 네거티브 캠페인이나 정치적 양극화에서 벗어나 나라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대선후보들이 한국경제의 저성장 시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복지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북한의 호전성과 불확실성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것인가, 한·중·일의 세력 재편과 영토분쟁 등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특히 양국의 대선후보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계를 드러낸 신자유주의 발전 모델을 수정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 발전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한·미 양국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두 나라가 처한 정치·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리더십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한다.

김용호 인하대 정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