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가는 말이 먼저다

입력 2012-10-25 18:43


지난 주말 오랜만에 남대문시장에 갔었다. 주말이라 노점에 쌓여있는 물건 가짓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길 위를 메우고 있었는데 시끌벅적한 시장 한쪽에서 갑자기 새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시장 상인과 손님 간에 싸움이 난 것이었다.

사람들의 눈길이 그쪽으로 쏠리고 복작복작한 시장통의 흐름이 한발 두발 느려지더니 결국 싸움 구경에 발이 묶여버렸다. 상인의 불친절한 말투와 손님의 무례한 언사, 둘 중 하나가 싸움의 발단이 된 듯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팔짱끼고 둘러선 오늘의 배심원들에게 각자의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아무래도 좀 더 연장자인 상인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상황이었다. 졸지에 불경죄로 몰린 손님이 반쯤 울상이 되어 상인 편을 드는 한 아주머니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이 덜 먹은 게 죄예요?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지!” 어린 것이 죄가 아니라는 주장은 맞는데 손님의 말에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아니야?” 누군가의 뜬금없는 질문에 구경꾼들 모두가 혼란스러운 듯 두 가지를 반복해서 읊조리면서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뭐가 먼저야? 가는 말이야, 오는 말이야?” 가는 말이 먼저라는 스마트폰의 판결이 있기까지 잠시 동안, 현장의 의견은 ‘오는 말이 고와야 한다’가 대세였다. 그리고 판결이 내려진 뒤에도 이에 수긍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이라고, 시대에 안 맞는다고 어깃장을 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요즘 세상에 아무리 잘해줘 봐야 소용없다고, 뒤통수 맞기 딱 좋다고. 국어사전이 잘못되었다고도 했다.

주변에서 말린 덕분에 싸움판은 이내 정리되었는데 뒷맛 씁쓸한 무언가가 남아있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니. 언뜻 당연한 듯 여겨지면서도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신이 먼저 잘해주면 나도 그만큼 잘해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도 잘해줄 수 없다, 결국 내 언행의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다는 말인데,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면서 수동적이고 호전적이다.

말은 사용하는 언어대중에 의해 그 형태와 뜻이 바뀌기도 한다. 그렇게 바뀐 말을 학교에서 가르칠 것이고 아이들은 그렇게 배우고 자랄 것이다. 이 건강하지 못한 말의 뜻대로 아이들이 살기를 바라는가. 원 속담의 뜻은 자기가 남에게 말이나 행동을 좋게 하여야 남도 자기에게 좋게 한다는 것이다. 그게 옳고 모두에게 편하지 않을까.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