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대풍수’ 어설픈 퓨전 사극류… 지진희만 바라보기

입력 2012-10-24 19:20


“나는 황제국의 백부장 이성계다!”

SBS TV 드라마 ‘대풍수’에서 짐승 머리 투구를 쓴 조선 태조 이성계(지진희 분)의 포효다. ‘대풍수’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퓨전 사극류’라고 해야겠다. 아직까지는 정통 사극인지 퓨전 사극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조선여형사 다모’ ‘대장금’, 영화 ‘황산벌’ ‘스캔들’과 같은 퓨전의 맛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 ‘사극류’로 꼽는 이유다.

짐승 투구를 쓴 이성계. 눈이 큰 지진희가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고 호령하는 이 장면은 이색적이긴 하나 시청자의 마음에 녹아들진 않는다. 우리 역사가 아니라 여진족 풍 복색이 작용한 탓이다. 실제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원나라 천호(千戶) 벼슬을 갖다 고려로 귀부했다 하더라도 오랑캐 같은 ‘비현실’은 자부심을 잃게 한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판타지 장르 같은 느낌이 먼저 든다. 사극인데도 ‘원나라’를 원나라라고 못하고 대국, 황제국 하며 에두르는 것도 우습다.

‘대풍수’ 중심의 또 하나. 풍수에 근거한 비기(왕업의 터전) ‘자미원국(紫微垣局)’이 있다. 자미원국을 누가 손에 넣는지를 보는 것이 드라마의 핵심 요소다. 비기를 찾아 모험하는 영상물에 익숙한 세대를 겨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판타지 장르가 아닌 이상 약하다. 퓨전 사극도 사극이어서 원전의 스케치 정도는 시청자 대개가 알고 있어서다.

또 원전, 즉 여말선초의 사실(史實)을 우려내는 각색은 장면만 있고 심리묘사가 떨어져서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됐다. ‘사랑 따로, 몸 따로’의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가 드라마의 기본인데 ‘대풍수’에선 너무 뻔히 읽혀져서 채널 고정이 어렵다.

‘대풍수’는 전체적으로 맛없는 새싹 비빔밥처럼 깊이와 향이 배어나지 않는다. 고추장 맛만 난다. 가제본한 책과 같은 어설픔이다. 지진희의 연기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전정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