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준동]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입력 2012-10-24 18:56
LPGA(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62년 전인 1950년 13명의 회원으로 초라하게 출범했다. 그 후 LPGA는 눈부신 성장을 했다. 회원은 수천명으로 늘어났고 투어 대회와 상금 규모는 해가 갈수록 커졌다. 초창기 미국에서만 열렸던 대회도 이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멕시코 캐나다 싱가포르 프랑스 일본 등 전 세계에서 개최되고 있다. 최고의 시장에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지사. 한국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꿈의 무대’에 처음 노크를 한 선수는 구옥희(56)다. 그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스탠더드레지스터에서 한국선수 중 처음으로 LPGA 우승컵을 거머쥐는 신기원을 이뤘다. 이후 94년과 95년 고우순(48)이 일본에서 열린 LPGA 대회 도레이재팬퀸스컵에서 잇따라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두 선수는 LPGA 투어에 전념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 무대인 일본에서만 활약했다.
LPGA 투어 1세대 서서히 퇴장
본격적으로 LPGA 무대 공략에 나선 코리안 군단 1세대는 박세리(35) 김미현(35) 박지은(33) ‘트로이카’다. 선두 주자는 박세리다. 98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데뷔 첫 해 LPGA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 등 두 개의 메이저대회를 휩쓰는 사건을 만들어냈다. 특히 US여자오픈에서는 ‘맨발 투혼’으로 우승을 차지해 외환위기에 신음하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진한 감동을 연출했다. LPGA 개인통산 25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박세리는 2007년 6월에는 꿈에 그리던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면서 한국 골프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박세리에 이어 99년에 ‘슈퍼땅콩’ 김미현이 LPGA 무대에 도전했고, 이듬해에는 중학교 때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가 아마추어 무대를 석권한 박지은이 합류했다. 김미현은 155㎝의 작은 키에도 데뷔 첫 해 신인상을 차지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길어지는 코스에도 그는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8차례 정상에 올라 잔잔한 감동을 줬다.
박지은은 토종 스타였던 박세리 김미현과 좀 달랐다. 12세 때 하와이로 골프 유학을 떠난 박지은은 미국에서 화려한 아마추어 시절을 보내고 프로에 데뷔했다. 유창한 영어를 앞세워 투어 사무국 홍보활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한 박지은은 2004년 메이저대회 나비스코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등 통산 6승으로 트로이카의 한 축을 담당했다.
자신을 되돌아볼 계기돼야
2000년대 중반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은 30대에 접어들면서 세월과 함께 점차 잊혀져가는 듯했다. 홍수처럼 쏟아졌던 이들의 이야기는 최근 몇 년간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코리안 3인방이 최근 화제의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했다. 두 선수는 아름다운 은퇴를 선언했고, 한 선수는 건재를 과시한 것이다.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한 선수는 박지은이다. 그는 지난 8월 기자회견에서 은퇴를 선언한 뒤 11월 결혼을 위해 신부 수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21년 동안 정들었던 골프채와 영원한 이별을 고한 것이다. 이어 김미현도 24년의 골프인생을 접고 지난주 국내에서 열린 LPGA 대회에서 불굴의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눈물의 고별전을 가졌다.
수많은 ‘세리키즈’를 양산했던 박세리만은 지금도 활발하게 투어를 누비고 있다. 코리안 군단의 ‘맏언니’ 박세리는 지난달 국내 대회에서 9년 만에 우승하는 등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봤고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슬럼프도 겪는 등 고생도 했다. 이제는 여유가 있고 나름대로 나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됐다.”
한때는 라이벌로, 한때는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함께 국위를 선양했던 ‘코리안 트로이카’가 이제 여유를 갖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준동 체육부장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