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임항] 탐욕의 제도화

입력 2012-10-24 19:16


알래스카의 카리부(북미산 순록) 무리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한 부족에게 위기가 닥쳤다. 해마다 찾아오던 카리부 무리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왕좌왕했지만 지혜로운 노인은 나서지 않았다. 부족민들이 영양실조로 죽게 됐고 젊은이들은 노인을 찾았다. 그제서야 노인은 입을 열었다. “걱정마라. 카리부는 다시 온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마음을 다스리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카리부는 다시 온다.”

“지금 일어나는 일은 스노모빌을 가진 젊은이들이 기계의 힘을 믿고 카리부를 남획하는 바람에 빚어진 것이다. 카리부를 존중하고 카리부와 자신의 관계에서 꼭 필요한 만큼만 잡아야 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이 욕심으로 오염됐다. 내가 젊었을 때에도 총이 새로 도입되면서 카리부가 사라졌는데 당시 지혜로운 노인이 나서서 같은 말을 했었다.” 국립수목원 신준환 원장이 쓴 ‘전통생태적 측면에서 본 숲’에 인용된 한 외국학자의 글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각 당과 무소속 후보들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복지와 교육을 위한 공공지출의 증대, 심각한 노인빈곤문제와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은 재정수요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진다. 급기야 증세는 불가피하다는 점에 각 후보들이 동의하기에 이르렀지만 그것은 너무 매력 없는 아이템이다. 결국 끝없는 성장, 혹은 새로운 성장 동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의 무모함을 지적하는 전문가와 대학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짧은 기간동안 십수조원의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등의 반론이다. 그러나 지금의 재정배분관행이나 경제성장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 다수가 행복해지기 위해 꼭 파이를 키워야만 하는 것일까.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세금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교통에너지환경세다. 연간 15조원 안팎에 이르는 세수의 80%가 교통시설특별회계에 들어간다. 이 가운데 절반인 약 6조원이 도로건설에 투입된다. 지방에 가면 텅 빈 도로, 중복도로가 넘쳐난다. 한시적으로 도입된 이 세금은 ‘도로과잉투자’ 여론에도 불구하고 벌써 두 번째 기한이 연장됐다.

시효가 지났는데도 일몰을 거부하면서 건재하고 있는 각종 보조금들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다소비 업체들에 제공되는 값싼 심야전기, 농어촌에 대한 면세유와 전기요금 보조금 등은 세계 1위를 다투는 에너지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결국 한전의 적자를 메우느라 매년 조 단위의 세금이 낭비된다. 숲과 습지 등 국토와 생태계도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송전탑과 도로 등의 건설로 인해 파괴되고 있다. 미래세대가 잡아야 할 카리부까지 남획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신흥시장의 탐욕스러운 기업인과 ‘대마불사’ 신화에 편승한 금융계 도덕적 해이가 1997년의 외환위기를 낳았다. 더 큰 집과 재산 증식의 기회를 노린 중산층의 탐욕을 악용한 주택담보대출 파생상품과 부동산 거품이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대의제 민주주의와 결합한 자본주의 경제는 현세대의 탐욕을 위해 미래 세대의 부를 미리 당겨 탕진하면서 체제를 유지하는 시스템이다. 한 경제학자가 ‘폭탄 돌리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IT 버블도, 부동산 거품도 그렇게 해서 터졌다. 나는 그것을 ‘탐욕의 제도화’라고 부르고 싶다.

제도화된 탐욕을 제거하는 게 복지·교육·노동시장 정책 예산을 확보하는 첫 걸음이 돼야 한다. 시효가 지났거나 선심성인 특별회계나 기금을 없애고 전기요금을 대폭 올리자는 대선후보가 나와야 한다. 기득권층의 양보 없이 자본주의의 미래는 없다. 값싼 석유의 시대가 끝나면서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불가피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우리가 경제성장이라고 부르는 카리부를 과도하게 탐욕적으로 추구하면 그들은 도망가 버릴 것이다. 마음을 다스려 긴 저성장시대에 대비할 때 카리부는 오히려 돌아올 것이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