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살의 007’ 화려한 부활… ‘007 스카이폴’
입력 2012-10-24 18:25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액션, 아름답고 매혹적인 본드 걸, 거대한 악당. 액션첩보영화의 고전 ‘007 시리즈’가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오락영화로 시작했지만 반세기를 흘러오며 단순한 스파이 활극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제임스 본드가 대영제국 해체로 절망에 빠졌던 영국인들에게 대리 만족을 줬다는 분석도 나왔다. 50주년 기념작이자 시리즈 23번째 작품인 ‘007 스카이폴’이 26일 전 세계에서 동시 개봉한다.
# 누드모델 출신 숀 코네리 007 바람 일으켜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영국 해군 정보분석가 출신의 작가 이안 플레밍의 소설에서 비롯됐다. 1953년 첫 작품 ‘카지노 로열’이 초판 한 달 만에 매진된 것을 시작으로 시리즈 전체로 600만부 이상이 팔렸다. 제작자 알버트 R 브로콜리가 이 시리즈를 영화로 만들었고, 1962년 10월 5일 영국 런던에서 첫 영화 ‘007 살인번호’가 상영됐다.
007은 영화 역사상 최장의 프랜차이즈 영화로 군림하며 지금까지 50억 달러(약 5조6000억원)를 벌여들었다. 그동안 총 6명의 제임스 본드와 65명의 본드 걸, 46명의 악당이 나왔다.
1대 제임스 본드는 영국 출신 숀 코네리. 애초 제작자는 미국 미남배우 캐리 그랜트를 염두에 뒀다. 그러나 계약상 문제로 무명 숀 코네리를 선택했다. 누드모델 출신의 코네리는 포마드로 넘긴 머리,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단숨에 007 바람을 일으켰다. 이후 조지 라젠비(호주), 로저 무어(영국), 티모시 달튼(영국), 피어스 브로스넌(아일랜드), 대니엘 크레이그(영국)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본드 걸로는 ‘비키니 여신’으로 불리는 우슬라 안드레스(스위스)를 비롯해 할리 베리(미국), 에바 그린(프랑스), 킴 베이싱어(미국) 등이 인기를 끌었다.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은 조류학자였던 실존인물에서 따왔다. 새를 좋아했던 원작자 플레밍이 새 관련 책을 읽다가 제임스 본드라는 저자 이름을 발견했다. 그에게 소설 속 비밀요원 이름으로 사용할 것을 제의하자 흔쾌히 수락했다는 후문이다.
본드와 맞서 싸운 악당은 시대를 반영해왔다. 냉전 시대에는 주로 소련과 맞붙었으나 소련 해체 이후 본드의 옛 동료나 미디어 재벌, 석유 재벌의 딸 등 다양한 적이 나타났다. 미국 9·11테러 이후엔 불량국가나 국제테러조직에 본드가 맞섰다.
# 드라마 강조한 23번째 작품 ‘007 스카이폴’
터키 이스탄불의 오래된 전통 시장. 제임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가 영국 첩보조직 MI6의 국장 M(주디 덴치)의 지시를 받으며 누군가를 쫓고 있다. 촘촘한 주택가의 지붕 사이를 오토바이로 질주하고 달리는 기차 지붕 위에서 몸싸움을 벌인다.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갈 듯, 액션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듯 펼쳐지는 기차 액션은 ‘역시 007’이라는 탄성을 자아낸다. 화려한 오프닝에 이어 테마곡이 연주되면 회오리 모양의 프레임 사이로 검정 양복을 입은 제임스 본드가 걸어 나온다. 그리고 갑자기 화면을 향해 총을 겨누는 순간, 영국 인기 가수 아델이 부르는 주제곡이 귀를 사로잡는다.
50년을 이어온 007 시리즈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본드는 나이가 들었다. 영화도 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본드가 한 차례 임무 수행에 실패한 후 다시 돌아왔을 때 동료들조차 “새 재주를 보이려는 늙은 개”라 부르며 조롱한다. 체력 테스트를 통과하기도 힘들 정도다. 더 이상 천하무적의 영웅이 아니다. 그러나 50년 묵은 시리즈는 젊은 것, 새로운 것이 최선은 아니며 연륜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본드는 MI6에서 일하다 조직에서 버림받고 M에게 복수하려는 악당 실바(하비에르 바르뎀)에 맞서 조직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주인공인 본드뿐 아니라 조직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인간적인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M의 번민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전편들에 비해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다.
대니얼 크레이그는 물론 영국의 명배우 주디 덴치, 스페인 출신의 연기파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가 빛난다. 특히 바르뎀의 연기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보여준 집요함과 섬뜩함을 연상시킨다.
영화는 그 자체로 클래식이 된 본드를 통해 옛것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본드의 자동차인 1960년대 스타일의 ‘애스턴 마틴 DB5’와 마지막 결전이 펼쳐지는 스코틀랜드의 수백 년 된 저택은 고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도입부 기차 추격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하지 않고 배우들이 실제로 시속 50㎞로 달리는 기차 위에 올라가 촬영을 했다. 12분의 장면을 위해 3개월의 리허설과 2개월의 촬영기간이 걸렸다. 영화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고 돈을 많이 들인 티가 물씬 나지만 오락영화로서의 재미는 떨어지는 편이다. 2시간 반에 이르는 상영시간이 지루할 수도 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