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호러 같은 멜로 ‘늑대소년’] 유치한 주제, 절묘한 交感

입력 2012-10-24 18:25


다소 어둡고 침침한 이미지의 포스터를 보고선 호러 스릴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영화 ‘늑대소년’은 웃음과 눈물을 적당히 버무린 한 편의 동화 같은 판타지 멜로 드라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한국영화에서는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늑대소년이라는 이질적인 캐릭터는 꽃미남 배우 송중기와 만나 지금껏 본 적 없는 매력적인 이미지로 거듭났다.

늑대소년과 인간소녀가 사랑에 빠지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1960년대 강원도 한 산골 마을이라는 신비로운 시공간을 배경으로 그럴듯하게 펼쳐놓았다. 미국에서 아들 내외와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던 할머니 ‘순이’(이영란)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한국에 온다. 그녀가 찾아간 곳은 강원도의 한 낡은 집. 순이의 기억은 47년 전 아스라한 소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폐병을 앓던 순이(박보영)는 엄마(장영남) 동생(김향기)과 함께 공기 맑은 강원도의 낡은 집으로 이사를 온다. 그리고 다음날 헛간 근처에서 때가 잔뜩 낀 채로 짐승처럼 기어 다니는 소년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놀라지만 차츰 익숙해진 순이 가족들은 소년을 거둬들여 씻기고 밥을 먹이며 ‘철수’라는 이름까지 지어준다. 순이는 ‘애견 훈련법’이라는 책을 보면서 철수를 길들이기 시작한다.

음식을 손으로 먹는 등 야수처럼 행동하던 철수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순이의 칭찬과 “기다려”라는 호령에 참을성을 갖게 되고 기다릴 줄 알게 된다. 두 사람이 교감하는 장면, 특히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순이를 바라보며 철수가 마법처럼 빠져드는 장면이 환상적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 아이’의 판타지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늑대로 길러진 소년은 태생적으로 다른 존재이기에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어렵다. 순이를 쫓아다니는 부잣집 아들 지태(유연석)의 음모로 철수의 비밀이 드러나고 군 당국까지 나서 철수를 사살하려 한다. 철수의 안전을 위해 떠나가는 순이에게 “가지마”라고 말하는 장면을 빼놓고는 으르렁대는 게 전부이고 눈빛으로 사랑과 슬픔을 표현하는 송중기의 연기가 빛난다.

비현실적이고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촘촘한 짜임새로 설득력을 높이고, 조연배우들의 유머러스한 연기로 대중성을 살렸다. 하지만 할머니 순이가 여전히 청년인 철수와 해후하는 마지막 장면은 오히려 여운을 지워버리는 사족처럼 보인다. 단편 ‘남매의 집’(2009)으로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 3등상을 받은 조성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 31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