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전규태 (4) 호주의 투병생활… 코알라에게 ‘느림’을 배우다

입력 2012-10-24 18:03


내가 퇴원할 때 주치의는 ‘섹스’는 큰 금기 사항이지만, 여행을 할 때에는 단테가 이루지 못한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을 찾듯 길을 떠나라고 권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나, 또는 첫사랑의 연인이 있다면 그녀를 찾아 가는 마음으로 떠나라고 했고 실제로 그런 심정으로 여행을 했다. 내 시화집의 가제(假題) ‘길 그 너머의 사랑을 찾아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화집 원고를 다듬으면서 ‘사랑의 추억은/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리움/여행은/매몰된 추억을/되찾는 준엄함//언젠가는 다시/삶의 여랑으로 되돌아오게 마련이지만/사람들은 추억을 찾아/으레 낯선 길을 헤맨다’라고 기필(起筆)의 붓끝을 곤두세웠다.

딴은 추억이 말라버린 잉크처럼 침윤된 채 시간이라는 노트에 녹아버린 뒤였지만 아무렇게 봇짐을 메고 나선 나 혼자만의 스케치 여행은 어쩌면 나의 기나긴 방황 중 스스로를 받쳐주는 부력(浮力)이기도 했다.

지난해, 세계적인 대기업 ‘애플’의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타계했을 때, 나는 ‘부유와 부유의 차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앞의 부유는 ‘잘 삶(富裕)’을 뜻하고 후자의 부유는 ‘떠돌아다님(浮遊)’의 뜻이다. “부유한 잡스는 죽었고 부유만을 일삼았던 나는 살았다”라며 내가 살 수 있었던 이유를 간추려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의 사후에 나온 전기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나 자신이 하잘것없는 존재이며 무위(無爲)하게 살아왔던가를 되씹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삶이 나와 비슷한 점도 적잖은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불우한 출생 환경, 채식주의의 식생활, 자연태의 삶, 평범한 생활을 즐긴 점, 그리고 종교관 등 그밖에도 유사점이 적잖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호주에서 투병 생활을 해오면서 느리기로 유명한 호주의 곰 코알라의 속성을 소상하게 관찰하면서 이를 닮으려고 사뭇 애써 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더디게나마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랫동안에 걸친 느림의 나라 호주의 자연 환경에서 얻은 교훈 덕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곤 한다.

귀국 후 나는 우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가까운 친구에게만 알리기로 마음 먹었다. 제일 먼저 시조시인협회 창립을 함께 했던 Y시인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놀랍게도 냉담했다. “전규태는 죽은 지 오래 됐는데 사칭을 하다니…” 하며 덜커덕 수화기를 놓아버렸다. 다시 휴대전화로 걸어 번호를 남기고 또 걸었더니 나와 자기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을 하나라도 대라는 것이었다. 나임을 확인하자 시조잡지사로 곧 오라며 반가워했다.

시조사에 들렀더니 어느 새 많은 시인들이 모여 있었다. 어떻게 살아났는지?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지 질문들이 쏟아졌고, 그 문답이 그대로 그 다음 달 잡지에 ‘기적은 있다-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란 제목으로 특집 기사가 나와 나의 생존이 시조단에 우선 알려졌다. 그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화창한 여름 날, 무더위보다 더 치열한 의지로 절대적인 절망과 역경을 극복하고 돌아온 분을 만났다. 기적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새 삶의 주인공-그는 10여 년 전 건강과 명예, 부(富)를 일시에 잃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노숙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풍문이 돌기도 했으며 누군가와 잠적했다는 염문 섞인 얘기도 들렸다. 당시 교착 상태에 있었던 북·일 외교관계를 풀기 위해 일본 관계 전문가인 전 교수를 납치했다는 등 황당한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는 가운데 ‘전규태’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져 갈 무렵 불쑥 이렇게 우리 앞에 기적처럼 나타났다.”

세상에는 기적이란 없다고들 말하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를 적잖이 목도하게 된다.

누가복음 12장 1∼7절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과 ‘탕아의 비유가 떠오른다.

정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