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땀 한땀 그녀의 바느질… 조각보에 예술을 입혔다

입력 2012-10-23 18:19


조선족 수공예작가 김원선씨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중국 소설가 모옌(57).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문화혁명이 일어나 소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스무살이 넘어서야 다시 공부를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66년 일어나 10년간 이어졌던 문화혁명기에 성장기를 보냈던 중국인들 대부분은 모옌처럼 순탄치 못한 시절을 겪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조선족 수공예작가 김원선(66)씨도 그 중 하나다.

손재주가 뛰어났던 그의 꿈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공부는 잘했지만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고3 때 문화혁명이 일어나면서 가족들은 자아 비판장에 끌려 나갔다. 강원도 강릉에서 하얼빈으로 건너간 할아버지는 부농이었고, 아버지도 공장책임자였기 때문이었다. 1988년 적십자 초청으로 서울에 올 때까지 그는 건설회사 경리로 일했다.

“서울에 와서 한복과 양장을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한국에 머무는 2개월간 다른 이들은 여기 저기 관광을 다녔다. 그는 적십자사에서 소개해준 선미한복학원(원장 박오례)에서 한복을, 마담포라(당시 대표 이철우)에서 양장을 배웠다. 마흔이 넘어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조각보를 재현하고, 더 나아가 조각보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해 중국에선 물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공예 작가가 됐다. 그는 지난 9월8일 유네스코로부터 그의 작품이 ‘우수 수공예품 인증’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상식은 12월 중국 북경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원선공예연구소’ 소장인 김씨는 고졸이지만 칭화대학교와 북경복장대학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원선 퀼트’ 강의를 하고 있다. 또 중국 퀼트 색채 예술 연구전문위원회’ 부주임을 맡고 있다. 주임은 정부 관리가 담당해 일반인으로는 최고위직이다.

한국 고유의 천연염색 강좌를 중국 대학에 개설하기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를 그의 스승 박오례씨 집(서울 압구정동)에서 지난 16일 만났다. 박씨 집 벽에는 그가 처음 만든 조각보부터 최근 작품까지 빼곡히 붙어 있었다. 박씨는 70년대 서울에서 유일했던 한복학원을 운영하며 한복의 과학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황금골무상을 수상한 한복계의 산증인이다.

박씨는 “김 선생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 만큼 머리가 좋았고, 손끝이 무서우리만치 매웠다”고 기억했다. 스승의 칭찬에 얼굴이 발그레해진 김씨는 “잘 가르쳐 주신 덕분”이라면서 아직 예술가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고 손을 내저었다.

김씨는 “한복을 배울 때 학원에서 버리는 자투리가 아까워 그것을 모아 바느질 연습을 한 것이 오늘의 김원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중국으로 돌아간 그는 1991년부터 서울나들이를 할 때마다 한복 자투리로 만든 찻잔 받침, 조각보 등을 선물 했다. 그의 솜씨에 반한 한복 디자이너들은 ‘치마 저고리감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부터 10년 가까이 자투리를 이어 한복감, 커텐, 상보 등을 만들어 팔았다.

꽤 많은 수입을 올렸던 그는 2003년 장사를 접었다. 김씨의 것을 사서 대여섯 배씩 남기고 팔던 한 한복디자이너가 아예 김씨의 조각보를 자신의 것인양 특허등록을 했다. 김씨는 “그 사람이 고맙다”고 했다. 솜씨 좋은 장사꾼에서 예술 감각이 뛰어난 작가로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어 줬기 때문이란다. 가끔 명장이나 장인으로 선정된 이들의 도록에서 당시에 판매했던 것들을 접하게 된다는 그는 “내가 팔았으니 구입한 사람 것이다. 그러니 개의치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국내 단체전에 몇 번 출품했던 그는 “한국 것을 흉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같은 말을 쓰는 한 민족인데…’ 싶어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만의 바느질법을 개발했다. 보통 조각보는 조각들을 감침질로 잇지만 김씨는 세땀뜨기로 잇는다. 감침질보다 하기는 어렵지만 세땀이 포인트가 돼 더 아름답다.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가 됐고, 경제적 여유도 생겼지만 그는 여전히 한복 자투리만을 고집하고 있다. “조각보는 원래 자투리로 만드는 것이고, 한복 자투리를 쓰는 것은 그것이 우리 민족의 옷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럽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김씨의 꿈은 서울의 리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 것. 서울올림픽 때 삼성전자의 제품을 보고 놀랐다는 그는 “리움이 삼성전자에서 하는 것이라고 해 가봤는데 역시 좋더라”면서 그곳에서 꼭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난 21일 자투리를 한아름 싸들고 하얼빈으로 돌아갔다. 그것들은 또 아름다운 작품으로 변신할 것이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