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진타오 집권 10년 성적표… 경제는 황금기, 정치는 빙하기
입력 2012-10-23 21:53
‘경제는 G2, 정치는 후진국’ 후진타오·원자바오(胡錦濤·溫家寶) 집권 10년에 대한 성적표다. 지난해 중국의 GDP 총액은 47조2000억 위안(약 8354조원)이었다. 후진타오가 국가주석직을 맡기 전인 2002년에 비해 1.5배나 늘었다. 중국의 GDP는 2008년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로 올라섰다. 중국은 2010년 GDP에서 일본도 추월해 소위 ‘G2’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정치 개혁은? 중국의 지식인들은 경제 분야에서 빛나는 성과를 냈지만 정치 개혁은 기대 이하라고 단언한다. 이대로 간다면 공산당이 신뢰의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GDP 성장률 연평균 10.7%… G2 등극
◇외환보유고 6년 연속 세계 1위=중국이 후 주석 아래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이뤄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평균 10.7%였다. 같은 기간 세계경제 성장률 3.9%와 비교하면 엄청난 실적이다. 이는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연평균 성장률 9.2%보다 높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4.4%에서 2011년 10% 수준으로 확대됐다.
2011년 중국의 1인당 GDP는 3만5083위안(약 620만9700원)으로 2002년보다 1.4배 늘었다. 이에 대해 1인당 GDP를 평균 환율로 환산하면 2002년 1135달러에서 2011년 5432달러로 4.8배 증가했다고 국가통계국은 밝혔다. 1인당 소득에서 중진국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 만큼 부패나 빈부 격차, 환경오염 등에 대한 국민들의 문제의식도 높아졌다.
지난해 재정수입은 10조3740억 위안(약 1836조원)으로 2002년 대비 4.5배나 됐다. 중국 정부는 재정수입 급증에 따라 교육·의료·사회보험 등 민생 영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수 있었다.
외환보유고 역시 크게 늘었다. 2011년 외환보유고는 3조1811억 달러로 2002년에 비해 10.1배나 증가했다. 중국은 2006년 외환보유고 1조 달러를 돌파한 뒤 6년 연속 외환보유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대외 무역의 경우 2011년 상품무역 총액이 3조6421억 달러에 달해 2002년보다 4.9배(연평균 21.7% 성장) 늘었다. 세계 2위 무역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중국에 투자한 글로벌 기업은 2011년 기준 약 1400개에 달했다.
이를 놓고 ‘황금의 10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서는 장쩌민(江澤民) 주석과 주룽지(朱鎔基) 총리 시절 개혁 조치를 과감하게 추진한 덕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진국 함정’을 피해가려면 이러한 성과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경제구조의 불균형 문제 등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산층을 육성하지 못한 것은 후·원 체제의 경제 정책상 잘못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중국은 이제 더 이상 두 자릿수 성장률을 구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 및 정치연구소 허판(何帆) 부소장은 “향후 중국의 잠재성장률은 7% 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5년은 경제뿐 아니라 중국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관건이 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정치개혁 외면… 부패 만연·사회갈등 고조
◇정치 개혁은 ‘5세대 지도부’에게로=“사회주의 민주정치의 발전은 우리 당의 시종 변하지 않는 목표다.”
후진타오 주석은 2007년 10월 15일부터 시작된 17차 당 대회 보고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정치체제 개혁을 심화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국민 대부분이 일상생활에 여유가 있는 ‘샤오캉(小康)사회’의 전면적인 건설에는 인민의 권익과 사회의 공평 정의를 더욱 잘 보장하는 게 포함된다고도 했다.
그러나 18차 당 대회를 앞둔 지금 후진타오의 정치 개혁에 대한 평가는 냉담하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조치가 없었다는 얘기다.
중산(中山)대학 철학과 위안웨이스(袁偉時) 교수는 “후 주석을 비롯한 4세대 지도부는 다른 분야의 성공을 내세우면서 정치 개혁을 소홀히 해 인민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인 학습시보(學習時報)의 덩위원(鄧聿文) 부편집장이 지난달 ‘후·원의 정치 유산’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후진타오 집권 기간 동안 부패가 만연하고 사회적 갈등이 고조됐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법치사회 건설을 통해 공산당과 정부도 법의 견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앙당교는 공산당 고급 간부 교육기관으로 후진타오에 이어 국가주석이 될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교장을 맡고 있다.
학습시보는 22일에는 “싱가포르 국민행동당이 털끝만큼의 부정부패도 용서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고 쓴 싱가포르의 정치 개혁에 관한 평론을 게재했다. 중국공산당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중국의 미래에 대한 비관론자들은 지금 중국은 사회적 모순이 심화돼 청나라나 국민당이 맞았던 위기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시진핑을 정점으로 한 5세대 지도부는 이제 더 이상 정치 개혁을 미룰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형국이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