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공탁금-이제는 돌려 받아야 한다] 아소광업 조선인 광부 1만명 중 200명만 공탁 기록
입력 2012-10-23 22:12
2회 : 사라진 102만명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공탁금
창씨개명한 조선인 김○○씨는 수많은 일제 강제동원 노역장 중 ‘지옥탄광’이라는 악명을 떨친 아소광업이 운영하는 구바라 탄광에서 일했다. 2012년 현재 김씨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가 강제동원 피해자라는 사실은 아소광업이 작성한 공탁금 명부에서만 확인된다.
동일인물 김씨가 나오는 공탁금 명부는 2개다. 19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정부가 ‘선물’격으로 준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조사 결과(1946년 작성)’와 2010년 4월 강제동원 근로자에 대한 최종본이라고 건넨 ‘조선인 노무자 공탁 내역’이다.
두 문서 모두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우리 정부에 제공한 문서인데 김씨가 목숨 걸고 일한 대가인 공탁금 액수는 차이가 난다. 46년 기록에는 임금 61.5엔, 보급금 25엔으로 합계 86.5엔으로 나와 있는데 2010년 기록에는 임금 31.5엔, 보급금 25엔을 합쳐 김씨 몫 공탁금이 56.5엔으로 기록돼 있다. 30엔이 줄어든 것이다.
두 문서상 일치하는 것은 구바라 탄광에서 일한 조선인 강제동원 노무자가 198명이라는 것뿐이다. 198명에 대한 공탁금액을 비교해보니 181명(91.4%)의 공탁금이 46년 작성된 문서가 2010년 문서보다 많았다. 64년 사이에 공탁금이 불어난 노무자는 17명(8.6%)에 불과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아소광업이 운영한 일본 내 조선인 강제동원 노역장 10곳 중 공탁금 명부가 존재하는 곳은 구바라 탄광이 유일하다. 이 탄광은 10곳 중 가장 규모가 작고 조선인 강제동원 시기도 가장 늦었다. 46년 일본 후생성이 작성한 문서에는 이 10곳의 노역장에서 일한 조선인 노무자가 1만700명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시 말해 1만명 중 200명 정도의 공탁금 기록만 남아있는 셈이다.
아소광업이 전후 연합군총사령부 지시에 따라 공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늉’만 냈다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아소광업은 일본 최대 명문가인 아소 가문이 운영하는 아소그룹의 자회사인 아소 시멘트로 이름을 바꿔 현존하고 있다. 대한(對韓) 강경파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이 가문 소속이다. 아소 전 총리는 2009년 일본 국회에서 아소 그룹의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해 “당시 너무 어려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파악 공탁금 액수 오락가락=강제동원 노무자 공탁금 관리 주체인 일본 정부는 정확한 공탁금액마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4년 10월과 이듬해 10월 국회에서 조선인 노무자 공탁금이 각각 2억1514만엔, 1억6770만엔이라고 밝혔다. 2010년에는 우리 정부에 6만4279명 분, 3517만엔이 조선인 노무자 몫의 공탁금이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작성된 내각부 정보관리·개인정보 보고서에는 조선인 군인·군속·노무자의 총 공탁금이 1억1984만엔으로 적혀 있다.
소수의 일본 의원들은 10여년 전부터 과거사 정리 차원에서 공탁금 현황 파악을 위한 기구를 만들자는 목소리를 냈지만 이 기구는 출범하지 못했다. 지난 19일 도쿄 의원회관에서 만난 민주당 이시게 에이코 중의원은 “국회도서관 내부에 그런 연구평가조사국 조직을 만들려고 꾸준히 노력해왔지만 (의원) 다수파에 밀려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특별취재팀 =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이성규 기자 zhbago@kmib.co.kr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