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등 큰손 고객 뺏어가… 판매수당 삭감 ‘맘대로’
입력 2012-10-22 21:38
기아차, 판매대리점 영업 제한 어떻기에
기아자동차 판매대리점을 운영하며 렌터카 업체를 통해 판매실적을 올리던 A씨는 2006년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기아자동차가 대리점 운영 매뉴얼을 갑자기 바꿔 회사가 등록한 특판업체와 렌터카, 법인택시 등 대량거래처에는 차를 팔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후 A씨는 영업사원에게 생명과 같은 판매처 고객을 모두 포기해야 했다. 궁여지책으로 일반인 고객만을 대상으로 차를 팔았지만 재기는 불가능했다.
경기도에서 기아차 판매대리점을 운영하는 B씨는 지난해 신입 직원 채용을 위해 국내영업본부에 ‘등록코드’를 신청했다. 대리점 대표들은 기아차 소속 직원이 아니지만 인원 채용의 모든 과정에서 본사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본사는 코드 발급을 차일피일 미뤘다. 별다른 결격 사유를 지적하지도 않고 ‘기다려 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코드는 발급되지 않았고, 신규 인력을 보강해 영업력을 높이려던 B씨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직영대리점 보호를 위해 판매대리점을 차별하는 기아차의 불공정 관행은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리점 사장들은 영업 제한조치를 받으면서도 반발할 수 없었다. 본부와 2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또 20년 넘게 ‘카 세일즈맨’ 외길인생을 걸어온 이들에게 있어 국내 자동차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현대·기아차의 시장 점유율은 81.6%에 이른다.
허회준 기아자동차대리점협회 회장은 22일 “직영대리점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한 본사 측이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하려는 것”이라며 “독립 사업자이지만 사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시장지배적 지위를 활용한 기아차의 횡포는 거래처와 직원 채용 제한만이 아니다. 지난해 2월 기아차 영업본부는 전국 대리점에 협조문을 보냈다. 생산단가가 올라 모닝 판매수수료를 0.5% 포인트 낮추겠다는 내용이었다. 모닝은 국내차 시장에서 점유율 10%에 육박하는 기아차의 주력 상품이다. 모닝의 평균가격을 1000만원으로 잡으면 대당 5만원의 손해를 보는 셈이다. 직영대리점과 달리 기본급도 없는 판매대리점에 내려진 일방적인 조치였다. 대리점 사장들은 강력 반발했지만 본사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기아차는 이미지 개선을 위한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도 판매대리점에 일방적으로 대금을 부담시켰다. 사업비의 40%는 회사가 부담하겠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전시장 인테리어 비용만 40%를 부담했다. 전시장 비용 60% 외에 사무실 개조 비용도 고스란히 대리점의 몫이었다. 대리점협회에 따르면 인테리어 공사로 대리점 사장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평균 2121만7000원의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표준화 공사로 대리점 공간은 3년 전에 비해 22.3%가 늘었지만 직원은 총량제에 걸려 늘리지 못했다.
판매대리점 영업을 제한하는 기아차의 불공정행위는 과거 현대차 사례와 유사하다.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차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판매대리점의 거점이전 승인과 영업직원 채용을 거부하고 판매목표를 강제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215억8100만원을 부과한 바 있다. 현대차는 이에 소송으로 맞섰다. 2010년 3월 대법원은 판매목표 강제 부분의 과징금은 위법하다고 봤지만 판매대리점 거점 이전 승인을 지연하고 직원 채용을 거부한 것은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한 행위라며 부당성을 인정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