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음란물에 뻥 뚫린 초중고 교실… 학교PC ‘필터링 우회 프로그램’ 인터넷 확산
입력 2012-10-22 19:22
22일 서울 서대문구 A고등학교 ‘정보와 컴퓨터’ 수업시간. 교사 이모(34)씨의 시선이 바쁘게 움직였다. 둘째 줄에 앉은 학생의 움직임이 수상했다. 확인해 보니 이 학생은 온라인 게임에 접속한 상태였다. 수업시간에 게임을 하다 적발된 학생이 오늘만 벌써 세 명째다. 이 교사는 요즘 수업시간마다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음란 사이트에 접속하는 학생들을 단속하느라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학교 내 모든 PC에 유해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학생들이 온라인에서 유해사이트 차단을 무력화하는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설치해 차단을 피하기 때문이다. 이 교사가 전한 요즘 학교 풍경이다.
일선 학교들이 교내 컴퓨터실에서 게임을 하거나 음란물을 보는 학생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서울 강북구의 한 중학교에선 컴퓨터 교사와 보조교사가 교실 앞뒤에 서서 학생들이 사용하는 모니터를 하나하나 감시하기도 한다. 교사용 컴퓨터에서 학생들이 사용하는 컴퓨터를 감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놓은 곳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한 차단프로그램을 깔고 감시 시스템을 구축해도 학생들이 게임하거나 음란물을 보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교사들은 하소연한다.
이는 유해사이트 차단프로그램을 무력화시키는 ‘필터링 우회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컴퓨터의 IP주소를 변경해 유해차단 범위를 벗어나도록 함으로써 학교에서도 게임이나 음란물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 평택의 B초등학교 6학년 신모(12)군은 “이런 프로그램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자세한 설명과 함께 프로그램을 다운받을 수 있는 블로그나 카페들이 수백개 나온다”며 “서버를 관리하는 선생님한테 가끔 걸리기도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몰래 게임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8년 접속차단 우회 프로그램이 급속히 확산되자 이를 막기 위해 접속차단을 강화했지만 2009년과 2010년에도 유사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다. 정부가 다시 기술적 대응에 나섰지만, 최근 업그레이드된 우회 프로그램들이 또 다시 등장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일부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접속차단이 되도록 조치했지만 매년 업그레이드된 우회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어 골치”라고 말했다. 유해물 차단업체의 한 관계자는 “단순히 유해사이트를 차단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P2P, 웹하드 등 유해물 유통경로를 막는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