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정당

입력 2012-10-22 18:40

정치학자들은 정당의 기원을 영국의 토리당과 휘그당에서 찾는다. 17세기 말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자격 논쟁이 치열했던 시기에 국교인 성공회 신도가 아닌 가톨릭 교도였던 찰스 2세의 동생 제임스를 후임 왕으로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의견이 갈린 데서 시작됐다. 인정하는 쪽이 ‘토리’, 인정하지 않은 쪽은 ‘휘그’라 불렸다. 토리나 휘그 모두 ‘도적’이란 의미였다고 하니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했음을 직감할 수 있다.

토리당은 이후 보수당으로 발전하고 휘그당은 맥이 끊어졌다가 산업혁명의 태동과 더불어 노동자 계급이 출현하면서 자유당, 노동당으로 이어졌다. 민주주의가 서구에서 태동한 까닭에 정당의 기원을 영국에 두지만 우리도 비슷한 시기에 정치적으로 뜻을 같이 하는 그룹끼리 뭉쳐 파벌을 이룬 적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부 사학자들이 조선 멸망 원인의 하나로 지목한 붕당이 바로 그것이다.

뜻을 같이하는 무리 또는 사리를 추구하는 무리로도 해석할 수 있는 붕당(朋黨)은 매우 부정적인 개념이다. 논어에도 ‘군자는 당(黨)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이때의 당이란 서로 도와 죄를 숨겨준다는 의미다. 당당하게 사리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공격에 대해 집단적으로 방어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렇지만 사학자들은 성리학이 발달한 중국 송대에는 붕당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내려져 구양수 같은 이는 ‘붕당론’을 통해 “군자는 군자와 더불어 도를 함께하고 붕을 이루며 소인은 소인끼리 이를 같이하여 붕을 이룬다”고 주장하며 붕당 개념을 바꿨다고 해석한다. 집단 구성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논의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춰 소인배의 집단과 군자 집단을 변별하라는 의미였다.

따지고 보면 종교에 따른 왕의 정통성 유무나 왕후의 상(喪)을 얼마나 오랫동안 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따지는 속내는 거기서 거기다. 대의를 위한 듯하나 정파성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는 등의 일을 하는 것이 정당이라고 하지만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고 단지 필요의 산물일 뿐이다.

계층적 기반이 약해 사회의 특정 계층이나 세력을 대표하지 못하고, 강한 인물중심주의로 수장의 정치적 운명과 함께 정당의 존립이 좌우되는 우리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진보정당을 빼고는 강령과 정책이 베낀 듯 똑같을 수밖에. 기성 정당의 분발을 기대한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