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그대, 진홍가슴새인가

입력 2012-10-22 18:16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웨덴 작가 라게를뢰프가 쓴 ‘진홍가슴새’라는 동화가 있다. 옛날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지으실 때 저녁 무렵이 되어서 잿빛 털을 가진 조그마한 새 한 마리를 만드셨다. 그리고는 진홍가슴새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다. 그런데 이 새가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 저는 온통 잿빛 털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진홍가슴새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될 때 진홍가슴새라는 이름에 합당한 깃털을 갖게 될 것이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 날 진홍가슴새 둥지 근처 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졌고 십자가 위에 한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이 광경을 보던 진홍가슴새는 그 십자가에 달린 사람에게로 훨훨 날아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까 그 사람의 이마에는 가시면류관이 씌어 있어서 가시가 박힌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 그래서 새는 자신의 자그마한 부리로 가시를 하나씩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 가시가 뽑힐 때마다 피가 솟아나서 이 작은 새는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나중에 자기 몸에 묻은 피를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았고 결국 그 새의 목덜미와 가슴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새가 낳는 새끼들까지 모두 목덜미와 가슴에 선명한 진홍빛 털이 생기게 되었다. 결국 이 새는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대로 진짜 진홍가슴새가 된 것이다. 이 땅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딱따구리처럼 남을 물어뜯으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남의 가시를 빼 주면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딱따구리가 되어 담임목사의 허물을 잡아 공격하고 끌어내리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반대로 진홍가슴새처럼 자신이 고통 받더라도 어떻게든지 남의 가시를 빼 주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진홍가슴새로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무능한 것 같고 초라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나도 지나온 수년 동안 나름대로 한국교회 연합과 교회 영광성 회복을 위해 뛰었지만 돌아온 것은 안면마비와 건강상의 무리였다. 그래서 한동안 은둔하며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느 한 교회가 부흥하거나 큰 예배당을 짓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한국교회 전체의 이미지와 영광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진홍가슴새가 되어야 한다. 나 또한 진홍가슴새의 역할이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될 때도 있었지만 결국 그 고통이 내 가슴을 진홍색으로 물들이는 축복도 되었다.

이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가시를 뽑는 일을 하다 고통당하고 상처를 받더라도 영적 진홍가슴새가 되자. 딱따구리는 공격하고 상처를 내지만 진홍가슴새는 가시를 뽑으며 상처를 어루만져주지 않았는가. 그대, 진홍가슴새인가. 힘들고 어려워도 이웃과 교회에 고통을 주는 가시를 뽑고 또 뽑아보자. 우리의 마음이 붉게 물들고 가슴의 깃털이 피로 젖을 때까지.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