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도연] 정신건강에 대한 다섯 가지 오해
입력 2012-10-22 19:30
우울증 치료 중이던 고교 중퇴생이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흉기를 휘둘러 6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등 최근 우울증 또는 정신질환에 기인한 반사회적 범죄가 잦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의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1년간 정신질환을 경험한 유병률이 16%(577만명)로,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 차례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민 3%인 150만명이 최근 1년 중 우울증을 경험했고, 10% 이상이 평생 한 번은 우울증을 겪으며, 얼마 전 발표된 서울대 자료에는 이 대학 재학생 5명 중 1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정신질환 문제는 나와는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만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심장병이나 폐 질환, 암보다 훨씬 더 발생 빈도가 높다.
다만 그들이 사회적 편견이나 낙인을 두려워하여 병원 치료를 외면하고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정도의 차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다섯 가지 오해가 있다.
첫째, 정신건강 문제는 일부만 겪는다는 생각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우울증, 양극성 장애(조울증), 불안장애, 물질 사용 장애, 섭식 장애, 정신증 등을 진단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등 일상적인 삶을 영위한다.
둘째, 정신질환자는 사회와 격리돼야 한다는 믿음이다. 한때 암에 걸리면 무조건 죽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암에 걸리더라도 치료만 잘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로 치료 가능하다.
셋째, 정신장애는 나약함이나 개인적 결함의 신호이며, 당사자가 행복해지기 원한다면 간단히 행복해질 수 있고 만약 그 문제는 무시해 버리거나 극복할 의지만 있어도 간단히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신장애는 자연적으로 없어지지 않으며 전문적인 도움이 꼭 필요하다. 우울증이나 여타 정신건강 문제들은 당사자의 게으름이나 의지력 부족과는 관계가 없다.
넷째, 정신장애자는 폭력적이라는 생각이다. 미국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범죄자’라기보다는 ‘희생자’ 쪽에 가깝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와 듀크대 연구진은 정신분열증, 조울증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인보다 공격당할 확률이 2.5배나 많다고 보고했다. 기질적 성향을 감안할 때 폭력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정신장애를 겪을 확률이 더 낮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총 범죄 건수(178만건) 중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는 겨우 0.31%였다.
다섯째,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것은 정신건강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오해다. 트라우마는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이라크전, 월남전 등 파병에서 복귀한 군인의 경우 일반인들에 비해 자살률이 상당히 높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간주하고, 쉬쉬하고 덮거나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정신질환자 모두를 반사회적 인격장애(사이코패스)로 간주해서도 안 되고, 더더구나 예비 범죄자라는 선입견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정신질환자라는 편견과 배제, 낙인 예방을 위한 범국민적 인식 개선과 함께, 정신질환자에 대한 조기 발견 시스템에서부터 그들에게 필요한 치료 지원체계 마련 등 ‘지역사회 정신건강 안전망’이 보다 촘촘히 구축될 필요가 있다.
김도연(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