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의 中企 인력 빼가기는 범법 행위다
입력 2012-10-22 19:36
징벌적 제재방안 마련하고 기술인력 지원해야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의 네트워크 서비스를 국내에 처음 상용화한 C사는 미국 IT분야 리서치회사인 가트너가 뽑은 톱 10 전략기술 1위에 뽑힐 정도로 전도유망한 회사였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떠오르자 대기업과 경쟁업체들은 이 회사 연구진들을 빼내가기 시작했다. 수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함께 기술을 개발한 동지들이었지만 돈다발과 복지혜택을 내세운 대기업의 유혹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우리나라는 애플 같은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힘든 구조다. C사처럼 애써 기술을 개발해 놓으면 대기업들이 연구인력을 빼내가거나 그 분야에 진출해 중소기업을 고사시켜 버린다. 어제 중소기업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술유출을 경험한 중소기업은 12.5%였으며 이 중의 42.2%는 인력 스카우트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 스카우트에 의한 기술유출은 2008년 29.7%였으나 3년 새 비중이 크게 늘었다. IBK경제연구소의 지난 7월 조사에서도 주요 중소 제조업과 IT서비스업체 205곳 중 46.5%가 최근 5년간 한 차례 이상 대기업에 기술인력을 빼앗기거나 빼앗길 위협을 당했다고 답했다.
대기업들이 신규사업에 투자는 안 하고 중소기업의 개발인력을 빼내가 손쉽게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중소기업의 개발팀을 통째로 빼내 새로운 회사를 차리기도 한다. 이러니 중소기업들 입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인력사관학교냐” “대기업에만 좋은 일 시켜주는 기술개발을 하느니 차라리 외국에 나가 도박해서 돈이나 벌어야겠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닌가.
중소기업에서 핵심 인력을 빼내가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중소기업의 존폐를 결정하는 중대한 영업방해 행위다. 핵심인력이 빠져나간 중소기업은 당장 연구개발이 중단돼 신제품 개발에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신규 수주가 크게 줄어 결국 존립할 수 없게 된다. 대기업들은 말로만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외칠 게 아니라 중소기업의 핵심인력 빼내기를 중단하고 자체 인력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대기업만 독식하는 산업 구조는 지속될 수 없다. 누구나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사람은 창업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야 하고, 가능성 있는 중소기업들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들은 다시 대기업으로 커나가면서 선순환이 이뤄지는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핵심인력을 채용할 때 해당기업에 이적료(트레이드머니)를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근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의 이직을 합법화하고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중소기업 인력 빼내기를 영업비밀 빼내기와 같은 범법 행위로 보고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 아울러 우수한 인력들이 대기업으로 옮기지 않고도 중소기업에서 꿈을 펼 수 있도록 중소기업 기술인력연금이나 세제혜택 등 지원방안을 검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