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전규태 (2) 파산·노숙·癌선고… ‘잃음’과 ‘믿음’에 관하여

입력 2012-10-22 18:12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이 세 가지 소중한 것 가운데 으레 한 가지는 잃는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세 가지 모두를 호되게, 아니 깡그리 잃었고 그 때문에 노숙자 생활도 해보았고, 자살을 시도해 보기도 했으며 숨을 거두었다가 되살아나기도 했었다.

재산과 명예는 슬기와 노력으로 어렵사리 지켜질 수도 있겠지만, 건강은 결코 주의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유지되는 것은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을 요즘에 와서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자전적인 글을 쓰려면 어린 시절의 얘기부터 풀어나가야 되겠지만, 15년 전 경제적으로 파국에 이르고 그 충격 때문에 췌장암에 걸려 어렵게 수술을 마친 뒤 해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최근에야 귀국했기 때문에, 근래의 역경부터 얘기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파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대학 교수인데다가 문예계간지 ‘문학과 의식’지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고등학교 검인정 교과서의 저자이기도 하여 경제적으로도 제법 여유로웠다. 그 때문에 아파트 생활에 자족하지 않고 부촌(富村)의 저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신랄한 평론가로 그 당시 소문났던 한 제자는 노골적으로 나를 꼬집을 만큼 큰 집에 살고 있었고, 내심 늘 꺼림칙하기도 했다. 주위에는 당시 대법원장을 비롯해서 고위직 판검사, 관리들이 이웃하고 있었다.

바로 이웃집에도 준재벌급의 회장이 살고 있었고 아내는 그 부인과는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가 돼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회장이 갑작스럽게 이승을 떠났고 그 후 아내는 그 집에서 살다시피 하며 돌봐주고 있는 듯싶었다. 그 후 한 달쯤 되어서일까. 아내가 ‘미안하다’는 쪽지만 남긴 채 가출을 해버렸고, 이윽고 이웃집 부인이 찾아와 “여편네를 앞세워 남의 돈을 빼돌린 사기꾼”이라며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욕설로 끝나지 않고 나는 형사범으로 고발되었다. 채권자는 그 부인에 그치지 않고 20여명에 달했다. 모두가 내 이름으로 된 차용증이나 약속어음을 가지고 있었다. 급기야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길거리에 나서게 되었다.

‘모두가 내 탓이다. 내가 격에 안 맞는 부자동네에 이사온 때문이다’라고 자책했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강술만 들이켰다. 그 때문인지 하복부가 견딜 수 없이 아팠다. 동네 병원에 갔더니 예사로운 질병이 아닌 듯싶다며 종합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삼성의료원에서 검사해보니 췌장암이라는 날벼락 같은 진찰 결과가 나왔다. 암 고지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이를 도저히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처음에는 부정하고, “하필이면 내가…” 하고 분노하다가 차츰 체념하기 시작하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심리의 추이는 비록 나만이 아니라 모든 난치병 환자의 공통된 심리일 것이다. 이는 비록 암의 경우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밟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모든 위기 상황을 인정한 다음의 마음가짐이 그 사람의 앞날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것 같다. 일단 인정을 한 뒤에 낙담하거나 실의에 빠지게 되고, 그러다가 우울증에 빠져들어 심한 경우에는 자살에까지 이른다.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췌장암 선고를 받은 지인은 불과 석 달 만에 이승을 떠났고 나는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 그 차이는 그는 무신론자였고 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위기임을 인정하고 그 위기를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긍정적인 마음, 그리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자연스레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성분이 분비되면서 낙천적으로 장래를 내다보며 희망과 새로운 꿈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정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