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경집] 환경에서 생태로

입력 2012-10-21 20:09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을 중요한 정책 지침으로 삼고 대통령 직속으로 녹색성장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대의와 명분은 모두 갖췄다. 실제로 그 위원회가 현재와 미래의 핵심 가치로서 녹색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애썼다는 흔적도 많았다. 위원회가 집중한 문제는 저탄소 성장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시민에게는 그것이 환경문제를 총괄하는 것으로 여겨져서 불필요한 오해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것은 이른바 4대강사업의 졸속과 밀실야합, 그리고 그에 따른 환경의 파괴라는 부채가 훨씬 크게 작용해서 심리적 저항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녹색성장은 지켜야 할 가치

녹색성장위원회로서는 4대강과 직접 관련이 없으면서도 그런 오해를 받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반감은 정부의 여전한 홍보 위주의 정책 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절차와 방법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엄청난 혈세가 투입된 4대강 살리기가 오히려 환경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와 그 비판에 대한 외면과 변명으로 일관하며 오히려 생뚱맞게 치적으로 억지 홍보하는 것을 시민들이 수긍할 리 없다. 분명히 녹색성장이라는 가치는 이념과 집권 정당의 여부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저탄소성장에만 몰두하여 자칫 생태에 소홀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환경과 에너지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계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연은 단순히 환경의 보호라는 선언이 아니라 탐욕을 절제하고 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성찰과 그에 따른 실천을 요구한다. 저탄소성장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나서 자연과 더불어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다. 이제 환경은 지켜야 할 가치일 뿐 아니라 지고의 가치임을 깨닫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을 비롯한 지구 생명체의 위기이며 나아가 지구 자체의 위기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자연이 살면 인간도 살고, 자연이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자연과 환경의 문제는 인격 회복의 가장 기본적 조건이다. 따라서 환경 혹은 생태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그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수행되어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강자가 먼저, 그리고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합의와 자발성이다. 자연은 그냥 아름답게 푸르른 색으로 도색된 이미지가 아니라 지폐의 색깔로 대표되는 녹색을 먼저 떠올릴 것을 요구한다.

환경이라는 말에는 인간이 중심이고 자연은 그것을 둘러싼 부차적 조건이라는 함의가 강하게 깔렸다. 그래서 최근에는 생태라는 개념이 더 적극적으로 쓰인다. 생태(ecology)의 ‘eco’ 어원인 그리스어 ‘oikos’는 집을 의미한다. 생태는 주체와 객체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각각의 주체로 파악된다. 자연과 분리되어 인간 중심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의 인간,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더 이상 인간 중심주의만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조화를 먼저 생각하고, 더 나아가 생명에 기반을 둔 생명의 정의를 구현하는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과 맺는 새로운 관계이며, 자연과 새롭게 만나는 길이다. 인간은 더 이상 지구의 유일한 주인도 아니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대리인도 아니다. 인간의 그러한 자각은 사실 뒤늦은 반성이다.

느림과 불편 선택할 수 있어야

따라서 녹색성장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가치의 회복이며 속도와 편의보다 기꺼이 느림과 약간의 불편을 선택하여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는 사고의 전환에 바탕을 둬야 한다. 그 가치는 분명 유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중요한 가치이다.

김경집 인문학자·전 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