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주연] 가을의 미인처럼
입력 2012-10-21 20:09
얼마 전 모 남성 탤런트가 방송프로그램에서 “이 나이에 연상 만나기는 좀… 어린 여자가 좋다”는 말을 했던 것이 온라인에 기사화됐다. 지인인 여성이 그 기사를 자신의 SNS에 올리며 “나도 이 나이에 연상을 만나기는 좀… 나도 어린 사람이 좋다”고 올려서 웃으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사회가 나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 들어 보이면 ‘자기관리’를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으로 치부하다 보니 모두들 어려 보이기 위해서 헬스장에서 숨이 넘어가게 뛰고, 보톡스니 필러니 하는 시술을 받고, 젊은 사람 스타일로 옷을 입는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동안(童顔)’ ‘방부제 외모’라고 칭송해줘도 그냥 어려 보이는 나이 든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나이를 숨겨야 할 만큼 나이 든다는 것이 부정 받아 마땅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요즘 ‘동안’ 열풍이 지나고 ‘멋지게 나이 들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어 다행이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듯 명품 브랜드의 모델이 젊고 아름다운 20대에서 나이 든 여성들로 바뀌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명품 불가리의 메인 모델로 등장했다. 눈가 주름을 그대로 보여주어 60세라는 나이를 알 수 있지만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답다. 70대의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도 모델로 등장했다. 신세계백화점의 멤버십 잡지는 배우 장미희를 내세웠다. 젊었을 때 느낄 수 없었던 힘이 느껴졌다. 이들은 동안이 아니라 제 나이로 보인다. 억지로 어려 보이려 하지 않고 본래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준 것이 오히려 아름답다.
만약 누가 또 하나의 광고를 만든다면 추천하고 싶은 모델이 있다. 그분은 50대인데도 커트머리에 항상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표정이 활기차다. 마음도 고와 남에게 뭘 주고 싶어 안달이다. 나중에 나도 저런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실명을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실크로드박물관의 장혜선 관장이 주인공이다.
봄에는 연둣빛 잎사귀와 막 피어오른 꽃에서 보듯 만물이 아름답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을씨년스러워지는 대신 봄에는 눈에 띄지 않던 단풍이 나타나 뒤늦게 아름다움을 뽐낸다. 단풍은 봄과 여름 동안 제대로 보살펴졌다는 증거다. 세월을 막을 수 없지만 가을에 멋져지는 단풍처럼, 나도 그렇게 멋지게 나이 들기를 소망한다.
안주연(웨스틴조선 호텔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