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심과 괴리된 朴 후보의 정수장학회 해법
입력 2012-10-21 20:08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어제 기자회견을 갖고 정수장학회 문제에 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수장학회는 개인 소유물이 아닌 순수한 공익재단이며, 최필립 이사장이 설립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가깝다고 물러나라는 것은 옳지 못한 정치공세라고 했다. 박 후보 자신은 2005년 이사장직을 그만둬 장학회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이사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현 이사장을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언어도단이라는 종전 태도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예전과 비교할 때 달라진 점을 굳이 꼽자면 정수장학회 이사진에게 장학회가 더 이상 정쟁의 도구가 되지 않고, 국민적 의혹이 남지 않도록 국민들에게 해답을 내놓길 바란다고 언급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사진에게 장학회 명칭 변경과 최 이사장 진퇴 문제를 현명하게 판단해 달라고 주문했다.
법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보면 박 후보 얘기가 맞을 수 있다. 박 후보로선 노무현 정부 시절 강도 높은 감사를 탈 없이 통과한 장학회가 대선을 앞두고 다시 논쟁거리로 등장해 상처를 입고, 자신의 지지율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억울한 마음이 없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민심과는 거리가 있다. 박 후보가 전면에 나서 정수장학회 문제를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는 주장에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탓이다. 이미 수차례 지적됐지만, 1970년대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지낸 최 이사장과 박 후보는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고, 이사진도 친(親)박근혜 인사들이다. 전 부산일보 사주 김지태씨 유족은 강탈당한 재산을 되돌려달라며 소송을 벌이고 있다.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박 후보가 책임질 부분이 남아 있다는 말이다. 박 후보가 장학회와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논리로 정면 돌파하려는 것에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이 동의할지 의심스럽다.
박 후보는 과거의 잘못과 완전히 단절하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쇄신하겠다고 약속했다. 과거와의 단절론에는 아버지 박정희 시대의 부정적 유산도 포함돼야 한다. 박 후보가 지난달 24일 유신과 인혁당 사건에 대해 뒤늦게 고개를 숙인 이유 역시 이 때문일 것이다. 유신이나 인혁당 사건과 비교할 때 폭발력은 떨어지지만, 정수장학회 문제도 박정희 시대 과(過)의 범주에 속한다. 아직도 법정 다툼이 벌어지고 있어 현재진행형인 사안이기도 하다. 박 후보는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등 보다 과감한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그랬으면 논란이 수그러드는 것은 물론 박 후보가 바라는 대로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데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공을 넘겨받은 장학회 이사진은 민심에 호응해야 한다. 장학회의 언론사 지분 매각 검토 파문을 일으킨 최 이사장은 조속히 사퇴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