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文·安 복지 공약 비교] 추가 재원 15조원 필요… 우선순위·조달계획 없어
입력 2012-10-21 23:02
의료·복지 전문가 4인이 평가한 ‘의료·노인정책’
국민일보는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대통령 후보에게 복지정책 중 의료 양극화 및 노인빈곤 해소를 위해 어떤 공약을 준비하고 있는지 각각 물었습니다. 질문지 작성은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빈곤사회연대가 함께했습니다. 본보는 의료 및 복지 전문가 4명을 평가위원으로 선정, 세 후보가 보내온 답변 내용을 분석했습니다. 평가위원 △의료 양극화=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 서울대 간호대 김진현 교수 △노인빈곤=스웨덴 쇠데르턴 대학 최연혁 교수, 서병수 한국빈곤문제연구소장. 세 후보의 답변지 전문은 쿠키뉴스(www.kukinews.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료 양극화 평가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 모두 현재 62%에 머물고 있는 건강보험의 보장률(총 의료비 중 건강보험이 지불하는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또 세 사람은 지역 공공병원의 인력 및 시설 부족, 서울 대형병원 ‘빅5’에 환자가 몰리는 의료 전달체계의 모순 등에 대해서도 해결 의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어떻게’에 대한 답은 공통적으로 미흡했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와 김진현(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 서울대 교수는 “장밋빛 목표만 있고 구체적인 실천안이 없다”며 세 후보의 답변에 실망감을 표했다. 정 교수는 “최종 공약으로 보기에 정책이 너무 간략하다”고 비판했고, 김 교수도 “아직 준비가 덜된 듯 소요재정 및 정책실천 시간표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 후보는 평가지표들 중 ‘목표의 적절성’ ‘구체성’에서 1위를, 박·안 후보는 ‘실현 가능성’에서 공동 1위를 차지했다.
◇‘80% 고지’로 가는 세 가지 길=건강보험을 실질적인 의료 안전망으로 만들기 위한 세 후보의 정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각론이 빠진 목표는 공허하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김 교수는 “보장률 80%란 세 후보의 목표는 실현만 된다면 획기적인 개선안”이라며 “하지만 이를 위해 약 15조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한데 우선순위를 어떻게 매길지,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한 계획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총론과 각론 간의 충돌도 지적됐다. 정 교수는 “박 후보는 보장성을 강화한다면서 아직도 암, 심혈관 등 중증질환에 대한 국가 책임만을 논하고 있다”며 “이런 접근법으로 80%란 높은 목표치를 이루겠다는 계획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고 말했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의료비 중 가계에 가장 큰 부담이 되고 있는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에 대한 대책에 대해서도 평가위원들은 “안이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 후보는 3대 비급여에 대해 원론적인 확대 입장을 밝힌 반면 안 후보는 임기 2년차에 시작하는 3년 플랜의 시간표를, 문 후보는 ‘2013년 선택진료비, 2015년 상급병실료·간병비 보험적용’ 계획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3대 비급여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수반하는 영역인 데도 후보들 모두 아주 쉽게 보험적용을 얘기하고 있다”며 “문제의 크기와 해결을 위한 고민을 전혀 엿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도 “선택진료비의 보험적용은 당연하지만 간병비는 대책 없이 시작하면 자칫 병원의 배만 불려줄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의료계 눈치보기?=세 후보는 포괄수가제 전면 실시와 총액계약제 도입에는 나란히 반대했다. 포괄수가제는 질병별로 정해진 치료비를 병·의원에 지불하는 것이며, 총액계약제는 의료기관별 의료비 총액을 규제하는 제도이다. 두 제도 모두 수입 축소를 우려한 의료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김 교수는 “의료계가 반대해 온 두 제도에 대해 박 후보는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유보적 태도를, 문·안 후보는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추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세 후보 모두 의료계의 반대표를 의식한 듯 핵심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도 “지불제도가 가지는 중요성을 생각할 때 각 후보가 분명한 입장과 대안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노인빈곤 평가
‘고민 부족과 구체성 결여.’ 최연혁 쇠데르턴대학 교수와 서병수 한국빈곤문제연구소장은 노인빈곤에 대한 세 후보의 정책을 이렇게 요약했다. 노인빈곤에 대한 인식이 지극히 교과서적 원론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최 교수는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 모두 노인 생존권 등에 대한 철학적 고민의 흔적이 없다”며 “전체 복지영역과의 연계, 재정부담 산정 등도 답변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서 소장은 후보별로 “일관되게 보수적인 정책기조”(박근혜) “임기응변적 설명과 안이한 대책”(문재인) “복지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안목 부족”(안철수) 등을 꼬집었다.
문 후보는 평가지표 중 ‘목표의 적절성’에서 1위를, ‘구체성’에서는 박 후보와 동률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에서는 세 후보 모두 동일하게 낮은 점수를 받아 비교우위가 없었다.
◇자녀의 부모부양 의무 어디까지=노인빈곤 문제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부양의무제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다. 빈곤층 노인이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에서 탈락하는 일이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후보의 입장은 ‘부정적(박근혜)’ ‘부분수용(문재인)’ ‘유보(안철수)’로 선명하게 갈렸다.
박 후보는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해 “천문학적인 비용 때문에 포퓰리즘적 발상이라는 생각도 있다”며 우회적으로 반대했다. 대신 별도의 생계지원금이나 기초노령연금의 소득별 차등 지원책 등을 검토하고 있다. 추가 발표를 예고한 안 후보도 8조원의 추가 비용 등을 언급하며 유보적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서 소장은 “복지를 비용으로 보고 실제적인 빈곤문제를 외면하는 전형적인 보수 기조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박근혜) “추가 발표를 지켜봐야겠지만 신중함을 넘어 복지지출에 대한 절약적 성향이 뚜렷하다. 현 정부의 정책 자세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안철수)고 비판했다.
반면 ‘선(先)지원, 후(後)구상권 행사’(먼저 지원한 뒤 부양의무자의 경제력이 확인되면 국가가 돈을 청구하는 방식)를 주장한 문 후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줬다. 하지만 서 소장과 달리 최 교수는 문 후보의 해법에 대해 “재원확보 측면에서 조세수입의 증대나 재정지출의 전환 등 단기적이고 단편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낮은 점수를 매겼다.
◇‘빈곤층 3% 지원’ 늘어날까=국내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전체인구의 3%선으로 빈곤층 구제를 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박 후보는 수급자 확대에 대해 즉답을 피한 채 “빈곤의 수준을 재산정한 뒤 그 이하의 모든 빈민에게 따뜻한 국가의 손을 내밀 것”이라는 원칙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반면 문 후보는 아동수당·청년기금 등 보편복지 확대를 전제로, 전체 인구 대비 4% 수준의 수급비율을 전망했다. 안 후보는 사각지대 해소를 통해 1~2% 포인트 규모의 수급자 확대를 약속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박 후보의 빈곤 기준 재설정은 사회적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문 후보의 경우 재원 마련책이 장기적이지 않다는 점, 안 후보는 사각지대의 구체적 정의가 내려져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생계급여와 기초노령연금(만65세 이상 노인 중 하위 70%에 지급하는 연금)의 중복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박·안 후보의 경우 ‘반대’, 문 후보는 ‘찬성’으로 입장이 엇갈렸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