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1000만명 영화 왜 이렇게 흔해졌지?

입력 2012-10-21 18:18


영화 ‘도둑들’(최동훈 감독)에 이어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감독)가 20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함으로써 한국영화 최고 전성시대를 맞았다. 한 해에, 그것도 비슷한 시기에 잇달아 1000만명을 기록한 것은 처음으로 한국영화의 힘을 보여주는 대사건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1000만 관객의 이면에는 배급사의 상영관 독점과 인위적인 기록 만들기 등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 단관 개봉 VS 1000개 스크린

지금까지 1000만 고지에 오른 영화는 2003년 ‘실미도’(강우석 감독),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감독), 2005년 ‘왕의 남자’(이준익 감독), 2006년 ‘괴물’(봉준호 감독), 2009년 ‘해운대’(윤제균 감독) 등 7편이다. 1993년 ‘서편제’(임권택 감독)가 처음 100만명을 돌파한 이후 20년 만에 한국영화는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20년 전 100만명을 모은 ‘서편제’와 1000만 시대를 맞은 최근 영화들의 스크린 수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편제’는 당시 4월 서울 단성사에서 단관 개봉한 뒤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소문이 번지면서 전국 극장으로 확대돼 10월까지 장장 7개월 동안 상영되며 103만5741명을 기록했다. 한국영화 흥행사를 다시 쓴 것이다.

반면 지난 7월 25일 개봉한 ‘도둑들’은 열흘 만에 500만을 넘어선 데 이어 22일 만에 1000만을 돌파했다. 하루 최다 스크린은 1092개였다. 또 9월 13일 개봉한 ‘광해…’는 18일 만에 500만명을 넘어서고, 38일 만에 1000만에 도달했다. 최다 스크린은 1001개. 두 영화의 독과점적 스크린 장악에 의한 흥행 기록은 관객들의 입소문에 의한 ‘서편제’에 비하면 의미와 가치가 반감된다는 분석이다.

# ‘도둑들’은 정말 ‘괴물’을 눌렀나

‘도둑들’의 투자배급사인 쇼박스는 지난 2일 오후 2시 기준 누적관객수 1302만393명을 기록하며 ‘괴물’(1301만9740명)을 넘어서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 됐다고 밝혔다. 6년 전 ‘괴물’이 106일 만에 세운 최다 관객 기록을 36일이나 빨리 경신했다고 쇼박스 측은 주장했다. 하지만 21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공식통계는 1296만683명으로 6만명가량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해 쇼박스 측은 “영진위 통합전산망 시스템에 등록된 전국 극장이 99.5%로, 나머지 0.5%의 극장에서 개봉 이후 누적된 관객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영진위 측은 “전국 극장의 통합전산망 가입률은 2010년부터 99.9%”라며 “0.1%는 자동차극장이나 지방의 아주 영세한 극장 비율로 관객 수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배급사 측이 최다 관객을 경신했다고 주장한 지 18일이 지난 20일 현재 ‘도둑들’은 4개 극장에서만 상영 중이다. ‘괴물’의 기록을 깨려면 앞으로 6만명이 들어야 하는데, 하루 관객이 평일 50여명, 주말 100여명에 불과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간판을 완전히 내리지 않는 것은 기록 경신에 대한 배급사 측의 미련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 ‘광해’의 끼워 팔기와 ‘1+1’ 행사

지난 13일 900만명을 돌파한 ‘광해’는 개봉 이후 6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18일 개봉한 류승범 주연의 ‘용의자 X’(방은진 감독)에 19일까지 이틀 동안 1위를 내주며 2위로 밀려나기도 했으나 600여개 스크린을 확보하며 20일 다시 1위를 되찾았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도둑들’의 흥행 기록을 뛰어넘을 가능성도 있다.

이 영화의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 측은 “‘왕의 남자’가 겨울 방학 극장가 성수기에 개봉했던 것에 비해 ‘광해’는 역대 흥행 20위 영화 중 유일하게 비수기인 9월에 개봉해 시장 확대를 이끌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추석 연휴와 개천절까지 이어지는 특수기에 상영돼 비수기 개봉이라는 배급사의 평가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배급사의 계열인 멀티플렉스 CGV는 특정 요일에 삼성카드로 티켓을 끊으면 한 장 값으로 두 장을 주고, 쌍둥이의 경우 한 장은 공짜로 제공하고, ‘광’ 또는 ‘해’가 들어가는 이름을 가진 관객에게 한 장을 더 주는 ‘1+1’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1000만 관객 기록을 위해 선심성 이벤트를 남발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