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안녕하십니까-(2부) 학생 정신건강 현주소] (4) 학교폭력
입력 2012-10-21 19:08
가해 학생도 정신적 질환… 피해자는 심각한 트라우마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 1∼6월 전국 5개 지역 21개 초등학교 4∼6학년 7000명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가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전체의 30.9%였다. 최근 1년간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은 전체의 38.8%를 차지했다.
학교폭력은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들이 개인 성격 때문에 피해 학생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전문가들은 가해 학생들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해 학생이 가진 정신병은 피해 학생에게 심각한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남기며 또 다른 고통을 양산한다.
◇“폭력이 왜 나쁜 거죠?”=서모(18)군은 서울 구산동 A고등학교의 ‘짱’이었다. 서군은 어릴 적 몸이 약해 아이들에게 자주 괴롭힘을 당하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일진 무리’에 끼게 됐다. 어느새 그는 약한 학생들에게 상습적인 폭력을 휘두르고 금품을 갈취하는 비행청소년이 됐다. 친구들과 함께 반 친구를 폭행해 학내 징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징계기간이 끝나면 서군은 다시 비행을 일삼았다. 학교의 의뢰로 서군은 지난해 11월 서울 서부 Wee센터를 찾았다.
“선생님, 힘이 약할 땐 제가 애들한테 돈도 뺏기고 맞기도 했어요. 지금 저는 힘이 세졌고 그래서 제가 당한 것들을 갚아주는 것뿐이에요. 이게 왜 잘못이죠?” 서군은 상담을 시작하자 이렇게 털어놨다. 서군은 피해자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이 저지른 폭력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조차 없었다.
센터 관계자는 서군과 상담 후 뇌파검사를 실시했다. 일반인의 뇌파 활성 리듬분포도는 50∼60%가 평균이다. 하지만 서군의 뇌파는 안정도와 집중도를 나타내는 알파파, 델파파 등이 모두 30%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좌뇌와 우뇌의 밸런스도 깨져있었다. 서군은 좌뇌 쪽이 발달한 반면, 공감능력을 불러일으키는 우뇌의 활성도는 현저히 부족했다. 평균 좌뇌와 우뇌의 활성 밸런스는 60대40이지만 서군은 36대64로 정반대였다.
충동조절능력도를 측정해보니 99%가 나왔다. 일반인 평균은 서군의 절반인 50%다. 이 정도 수치면 스스로 충동 조절이 되지 않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피해 학생들은 트라우마 심각=“얘 때리고 싶은 사람 다 나와.” 6학년 복도가 쩌렁쩌렁한 소리로 울렸다. 2010년 서울 성산동 B초등학교 6학년이던 이모(당시 12)군은 아이들에게 끌려 다니며 폭행을 당했다.
교사에게 불려간 가해 학생들은 “심심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학교 측도 이 사건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 폭력을 주도했던 가해 학생은 이군 학급의 2학기 회장으로 선출됐다. 이군은 학교가기를 두려워하며 사건 당시를 계속 떠올리는 트라우마가 생겼고 부모는 전학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군은 2010년 겨울 Wee센터를 찾았다.
이군의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뇌파활성 리듬분포도는 정상범위의 절반 수준이었고 활성뇌파 그래프도 일반적인 볼록한 모양에서 직선형으로 바뀌고 있었다. 집중력도는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증상에 가깝게 측정됐고 두뇌 스트레스 정도도 정상범위의 배 가까운 수치를 나타냈다.
이군은 가정에서도 매사에 집중하지 못했고 쉽게 흥분하고 화를 냈다가 의기소침해지기를 반복했다.
◇예방에 중점을 둔 정책으로=이군과 서군에겐 음악, 미술, 놀이치료 등 통합치료가 진행됐다. 이들은 3개월∼1년간 상담을 받으며 어느 정도 정신 건강을 회복했다. 전학을 고려하던 이군은 상급학교로 진학해 로봇 만들기에 취미를 갖고 몰두하고 있다. 서군도 도덕성 향상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후 “센터에서 치료를 받으며 매일 뿌듯함을 느꼈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편지를 남기는 등 급속히 호전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Wee센터의 한정된 인력과 상담으로는 한계가 있어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선 예방에 중점을 둔 정책이 실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동소아정신과의원 김영화 원장은 “어릴 적 ADHD를 진단받은 아이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품행장애로 발전되면서 각종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