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전규태 (1) 열매 없이 역경만 있었던 80 인생을 회고하며

입력 2012-10-21 18:08


얼마 전 몇몇 제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산수(傘壽) 잔치를 조촐하게 가졌었다. 팔순을 기리는 기념문집을 내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고사하고 나를 중병으로부터 헤어 나오게 해준 그림 전시회를 조그마한 음식점에서 갖는 것으로 수연을 대신한 바 있다. 모두들 서운해 했으나 나는 내심 무척이나 흐뭇했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나의 삶은 꾸불꾸불하고 파란만장한 행로였다. 아슬아슬한 삶이기도 했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길이기도 했다.

자전적인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벌거벗은 나를 내보이게 되는 것 같아 망설여지기도 한다. 주어진 제목대로 ‘역경’은 많았지만 그 다음에 오는 ‘열매’가 아직은 별반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 문득 톨스토이의 단편 ‘두 노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에흄이란 노인은 술, 담배도 전혀 입에 대지 않고 오로지 마을을 돌보는 일에만 헌신했던 우등생이다. 한편 에리세이라고 하는 노인은 술, 담배도 즐기고 줄타기하듯 인생을 살아온 예사 노인이다.

이 두 사람이 생애 가장 큰 소원이었던 성지 순례에 나서게 된다. 여행길에 두 사람은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을 지나가고 있었다. 한 마을 어귀에서 에리세이가 목이 마르니 마을에 들렀다 가자고 했으나 고지식한 노인인 에흄은 “자네만 들렀다 오게나. 나는 지름길로 먼저 천천히 갈 테니 뒤따라오게나”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에리세이는 마을에 들러 어느 허름한 농가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거기서 기진맥진 쓰러져 있는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목마름도 잊은 채 이들을 돕고, 간병도 하며 양식을 구해와 먹을거리를 장만해주는 바람에 노잣돈을 이곳에서 거의 다 써버리고 말았다. 그는 위기에 빠진 이 가족을 구해주었지만 노자가 모자라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편 에흄은 에리세이가 곧 뒤따라오겠지 하고 걸어가다 이윽고 혼자서 성지 순례를 마치고 고향에 금의환향하듯 돌아온다. 어느 날 오랜만에 두 노인이 만났다. 이때 에흄이 의미심장하게 이런 얘기를 했다.

“발로는 성지를 다녀왔지만 마음은 왜 그런지 허전하단 말이야.”

목적지를 향해 한눈팔지 않고 곧바로 착실하게 다녀온 노인과, 옆길로 돌아가다가 결국에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되돌아온 노인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작가인 톨스토이는 오히려 목적을 못 이룬 에리세이 노인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의 사연을 떠올렸다. 남의 아픔을 스스로의 아픔으로 느끼는 마음-거기에는 이론도 신조도 율법도 이해관계도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느끼느냐, 느끼지 않느냐 하는 두 가지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 왔을까 느끼며 살아온 인생인 것일까…하고 새삼 되새겨보게도 된다. 나는 머리보다 마음을 소중시한다. 순구한 게 좋다. 직선이 좋다. 드넓은 광야를 한없이 끝없이 마구 달리고 싶은 그런 일직선의 길을 좋아한다.

직구를 잘 꽂는 야구 투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검은 직선을 서슴없이 대담하게 마구 긋는 장 뒤뷔페의 화법에 넋을 잃고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말처럼 우여곡절하고 파란만장한 삶에도 어디엔가 아름다움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고 본다. 톨스토이가 평가한 노인 에리세이의 삶을 닮았으면 좋겠다.

아픈 시련도 도리어 축복일 수 있고 소중한 만남이 새로이 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를 과감히 벗겨 보이려고 한다.

◇약력 △1933년 광주시에서 출생 △58년 연세대 국문학과 학부 및 동 대학원 졸업 △60년 연합신문 기자, 대한일보 논설위원 △6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 데뷔 △63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 교수 △75년 건국대 문학박사 △78년 미국 하버드대 옌칭학사 연구교수 △79년 미 컬럼비아대 교환교수 △82년 호주국립대 초빙교수 △2012 기독교문인선교회 회장

정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