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양기호] 일본의 노벨상

입력 2012-10-21 19:48


매년 10월 초순이면 노벨상 발표가 장안의 화젯거리가 된다. 한 개라도 혹시나 기대했다가 역시나 못 받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일하게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역대 국가별 노벨상 수상내역을 보면 미국이 압도적인 우세로 323개, 이어서 영국이 117개, 독일 103개, 프랑스 57개, 스웨덴 28개, 스위스 25개, 러시아 23개, 일본 19개이다. 주요 선진국의 순위를 그대로 보는 것 같다. 자연과학 분야만을 본다면 일본은 15개로 6위에 해당한다.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 국가인 점을 감안하면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일한 노벨상 수상 선진국임에 틀림없다.

이번에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는 iPS세포를 개발함으로써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존 거던 교수와 공동으로 노벨의학생리학상을 수상하였다. iPS는 인공다성능 줄기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의 약자이다. 야마나카 교수가 처음으로 발표한 것은 2006년이지만, 이미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사실상 노벨상 수상은 시간문제였다. 이것은 피부 등 보통세포에 4개의 유전자를 넣기만 하면 심장이나 근육, 신경, 망막 등 어떤 세포로도 될 수 있는 만능세포이다. 그를 도운 것은 밤낮으로 연구실에서 일하는 근면과 협조심이 뛰어난 200명의 후배와 제자들이었다.

야마나카 교수의 노벨상 수상이 발표되자 매스컴을 비롯하여 며칠째 일본이 온통 들썩거리고 있다. 그저 노벨상 수상자라기보다는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인생역전에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정형외과 의사를 지망하였지만 수술 실력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연구자 길로 접어들었다. 미국 글래드스톤연구소에서 유학을 마친 뒤 귀국하였지만, 취직이 안 되어 연구중단을 심각히 고민한 적도 있었다. 나라(奈良)의 첨단과학기술대학원대학에 겨우 자리를 얻었지만, 주제가 터무니없다는 이유로 연구비 신청마다 탈락 직전까지 갔었다.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서 마라톤대회에 출전하여 모금 활동을 벌인 적도 있다.

이번 노벨상 수상은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덕분이다. 1990년대부터 일본 정부는 과학기술예산을 일관되게 늘려서 20년간 3배 이상으로 증가시켰다. 야마나카 수상자도 2003년부터 5년간 정부예산으로 5000만엔을 받은 것이 연구를 위한 종잣돈이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일본 과학기술의 미래가 밝은 것은 아니다. 정부와 민간을 합쳐서 2010년도 과학기술연구비 총액은 17조1100억엔(약 238조원)이며, 불황 탓으로 3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일본은 전체 연구비 가운데 70% 이상을 기업이 출연하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민간연구 대국이다. 경기가 나빠지다 보니 당연히 민간연구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젊은 연구자 감소도 우려되고 있다. 일본 내 대학의 이공계 지원자가 1990년대 중반부터 줄어들고 있고, 대학이나 연구기관은 예산 부족으로 박사급 인재채용을 꺼려한다. 종신고용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외국에 유학하는 과학전공자도 다른 나라에 비하여 적다. 2004∼2007년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중국 1만5533명, 인도 5759명, 한국 4743명에 비하여 일본은 단 897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저나 이번 노벨상 수상으로 일본의 제약회사는 iPS세포연구에 더욱 활발하게 투자를 확대할 전망이다. 기적의 재생의료, 난치병해명, 신약개발 등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도 줄기세포 연구에는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다. 과연 이런 글로벌 경쟁을 이겨내고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

신문을 보니 국내 1위 제약회사가 병원 관계자들에게 수십억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