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혁상] 유럽연합
입력 2012-10-21 19:48
1815년 체결된 신성동맹은 나폴레옹 몰락 이후 유럽 평화와 질서 유지를 목표로 했다. 뛰어난 국제 감각을 지녔던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의 제안으로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이 체결했다. 위세가 대단했던 그의 뜻을 어길 수 없었던 유럽 국가 대부분은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의 사망 뒤 동맹은 와해됐다. 나라들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탓이다.
유럽 통합의 염원은 제2차 세계대전 뒤 다시 구체화됐다. 윈스턴 처칠의 주창 이후 탄생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유럽경제공동체로, 다시 유럽공동체로 이어졌다. 1993년엔 정치·경제 통합을 기치로 내건 유럽연합이 출범했다. 유럽 지도자들의 수세기에 걸친 꿈이 이뤄진 셈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유러피언 드림’에서 유럽 통합의 진정한 가치는 지속가능한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유럽연합이 몇 년째 몸살을 앓고 있다. 성장통이라 보기엔 정도가 심하다. 실상은 해체 위기까지 겪는 상황이다. 원인은 재정위기다. 그리스 등 일부국가에서 시작된 재정위기는 유럽 전역을 극한의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젠 세계 경기침체의 주범이 바로 유럽연합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사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판이한 국가들이 정치·경제 통합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공용어만 해도 23개다. 중세 이래 남유럽과 북유럽은 이질감을 드러내며 서로를 폄하해왔다. 골 깊던 갈등은 위기 속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부국과 빈국의 괴리는 갈수록 커지고 적대감 역시 팽배해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물리적으론 합쳐졌지만 화학적 결합까진 역부족인 모양이다.
요즘에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그리스는 총파업으로 공항, 병원은 물론 빵집도 문을 닫았다. 스페인은 독일이 유럽 재정위기의 원인이라고 비난했다. 경제상황이 서로 다른 17개 나라가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는 해묵은 지적도 다시 고개를 든다. 유럽연합의 두 기둥 역시 비난의 대상이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악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히틀러의 재림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이런 와중에 유럽연합이 올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갈등과 전쟁으로 얼룩진 유럽 역사를 평화의 시대로 탈바꿈시켰다는 게 선정 이유다. 하지만 유례없는 위기 상황에서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많은 냉소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60년간 역사상 가장 긴 평화를 가져온 주인공이지만, 요즘에는 이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유럽연합이다.
남혁상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