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 개시 결정
입력 2012-10-19 23:42
대법원 제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19일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은 1991년 5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간부였던 김기설(당시 25세)씨가 명지대생 강경대씨 사망 사건에 항의해 분신자살한 뒤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기훈(48)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던 사건이다. 시민단체들은 유서대필 사건이 당시 정치적 위기에 몰렸던 노태우 정부가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라고 주장해 왔다.
대법원은 결정문에서 “‘김씨의 평소 필적이 유서의 필적과 다르다’는 감정 의견을 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문서감정인들의 증언 일부가 거짓으로 드러났고, 거짓 진술을 재심 이외의 방법으로 판결에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재심 결정 사유에 해당한다”고 재심을 결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심은 서울고법에서 진행되고 재판은 재심개시를 결정했던 재판부가 맡게 된다.
다만 재판부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감정의뢰 결과가 종전 국과수 감정결과보다 현저히 우월한 증거가치가 있다고 본 원심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즉 유죄의 핵심적인 쟁점인 강씨의 유서 대필 여부에 대해 검찰 수사 당시의 국과수 감정결과와 진실·화해위의 감정결과가 엇갈린다는 이유로 명확한 판단을 보류한 셈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91년 12월 유서대필 혐의를 인정해 강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고 이듬해 7월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강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하지만 2007년 유서 필적 감정인 진모씨 등 2명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서 “유서 필적 감정에 참여하지 않은 채 감정서 공동심의란에 서명 날인했다”고 진술했다. 유서대필을 뒷받침했던 유력한 진술이 허위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후 강씨는 진실·화해위의 진실 규명 결정에 따라 2008년 1월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2009년 9월 무죄취지로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지만 검찰이 즉시 항고했다. 대법원은 3년 넘게 재심 여부 결정을 미루다가 뒤늦게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강씨는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 “재심은 당연한 결과인데 왜 이렇게 시간을 끌었는지 모르겠다”면서 “재심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20년 동안 재심을 위해 준비해 왔다. 이게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지난 5월 간암 수술을 받고 지방에서 요양하다 최근 경기도 고양 자택으로 돌아와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