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모두 ‘파더 쫄리’ 닮아 떠나는 순간부터 그리워할 것”… 톤즈 브라스밴드 10월 20일 출국
입력 2012-10-19 19:00
“모든 한국 사람들이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님 같았어요.”
‘울지마 톤즈’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잘 알려진 ‘톤즈 브라스밴드’가 7박8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20일 고국으로 돌아간다. 이들은 지난 16일 서울에서 열린 ‘2012 한·아프리카 장관급 경제협력회의(KOAFEC)’에서 기념 연주를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수출입은행 직원들과 멘토·멘티도 맺었다. 고(故) 이태석 신부가 만든 남수단의 이 밴드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음악이 아이들을 치유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됐다. 29명의 아이들은 ‘파더 쫄리’(John Lee·이 신부의 영문 이름)의 나라, 한국에서 그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출국을 하루 앞둔 19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동 한국수출입은행 연수원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잔디밭에서 공을 차며 뛰놀던 아이들은 옷에 새겨진 ‘스마일 톤즈(Smile tonj)’라는 문구대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었다.
“한국은 원래 이렇게 따뜻하고 친절한 곳인가요?” 처음 타 본 비행기,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 본 바다, 한국에서 본 높은 빌딩, 울긋불긋 단풍으로 뒤덮인 산…. 아이들은 한국에서의 모든 것이 신기했다. 아이들은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국사람”이라고 답했다. 윌리엄(18)은 “한국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한국사람들이 그리워질 것”이라고 했다.
윌리엄의 여동생은 지난해 말라리아로 숨을 거뒀다. 윌리엄의 어머니도 몇 년째 배가 아파 고통받고 있지만 마을의 조그만 의료시설 직원은 2년째 “임신 중인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픈 이유를 알 수 없는 남수단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숨을 거두기 일쑤다.
이 신부는 전쟁 폐허가 된 남수단에 2004년 ‘돈 보스코 학교’와 보건소를 세웠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꿈꾸는 방법’을 가르쳤다. 윌리엄은 “파더 쫄리는 어떤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는 대신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생각하는 방법을 일러줬다”고 말했다. 윌리엄은 한국의 빌딩을 보며 구체적인 꿈을 그렸다. 고국에서 건축을 공부해 멋진 건물을 짓는 꿈이다. “부모님에게도 제가 한국에서 봤던 것들을 누리게 해주고 싶어요.”
산티노(20)는 이 신부처럼 의학을 공부한 뒤 성직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의사는 많은 돈을 버는 직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특권을 버리고 낮은 곳에서 우리를 위해 희생한 그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해맑게 웃던 아이들은 이 신부와의 이별을 묻자 이내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 신부를 가장 잘 따랐던 브린지(15)는 “아직 파더 쫄리가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티노는 “하늘에서 우릴 보며 같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갑자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연수원 운동장에서 식당으로 연결된 ‘계단’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처음 본 계단을 오르며 ‘헉헉’거리는 서로의 모습에 웃음보를 터뜨렸다.
글·사진=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