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대를 말한다] 거짓말 컨트롤타워 ‘금간 신뢰’

입력 2012-10-19 21:54


軍의 심장 ‘合參’ 왜이러나

군대에 갔다 온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말이 있다. ‘거꾸로 서 있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군대에 만연한 비합리와 비생산성, 주인의식 부재를 단적으로 대변하는 표현이다. 북한 병사의 ‘노크 귀순’ 사건은 우리 군의 속살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흐트러진 최전방 경계, 허술한 보고 체계, 책임 회피와 거짓말 논란….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군의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 문화를 해부한다.

“양파 껍질 같네요. 한 겹 한 겹 거짓말로 덮여 있는 것 같습니다.”

17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육군본부 국정감사장에서 만난 한 의원은 동부전선 ‘노크 귀순’ 사건에 대해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지난 2일 발생한 이 사건으로 합동참모본부는 ‘거짓말 컨트롤타워’란 꼬리표가 붙었다. 최전방 경계소홀에 대한 책임을 덮기 위해선 적잖은 거짓말이 필요했다. 유사시 한반도 수호 책임을 지는 ‘안보 컨트롤타워’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했고 정부 일각에선 “허위 보고와 보고 묵살, 미숙한 상황판단이 합참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합참의 거짓말 릴레이는 육군 말단 부대부터 최고 지휘부까지 이어졌다. ‘똑똑똑’ 생활관 문을 두드려 귀순한 북한군 병사를 CCTV로 발견했다는 해당 부대의 초동보고는 처음부터 거짓이었다. 이 보고가 바로잡히는 데 일주일 이상 걸렸다.

국방정보본부는 일찌감치 수뇌부에 ‘노크 귀순’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지만, 합참에 의해 단순첩보로 취급됐다. 정승조 합참의장은 사건 발생 이틀 만인 지난 3일 이를 전달받았지만 “CCTV로 확인한 게 맞다”는 합참 작전본부장의 주장을 더 믿었다. 그리고 지난 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CCTV 확인’ 발언을, 11일 실시된 해당부대 긴급 국감에선 “10일에야 알았다”는 거짓말을 했다. 모든 게 들통 난 것은 15일 국방부 감사관실의 조사보고서 발표에서였다. 허위보고뿐 아니라 합참 내부의 긴급보고 사항 누락 등 무사안일 관행도 속속 드러났다. 상황실 장교가 해당부대의 초동보고를 며칠 동안 확인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 대한민국을 책임진 군이 이처럼 ‘얼빠진’ 행태를 보이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합참은 처음부터 ‘노크 귀순’을 알릴 의사가 없었던 듯하다. 북한 병사가 우리 군 생활관에 찾아와 문을 두드린 것은 그 자체로 무방비 상태인 최전방 경계태세를 보여준다. 이 사실을 ‘작정’하고 막으려다 보니 거짓말 릴레이가 벌어졌다. 또 책임자들이 받게 될 인사 불이익도 한몫 거들었다. 군은 대규모 진급 인사를 앞두고 있었다. 사건의 파장이 관련 장교들의 승진에 영향을 미칠 게 뻔한 터여서 은폐의 유혹은 어느 때보다 컸을 상황이다.

합참의 허위보고는 처음이 아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사건 직후 늑장보고에 대한 질타를 받게 되자 합참은 소집하지도 않았던 위기상황조치반을 “이미 가동했다”고 태연하게 둘러댔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열영상관측장비(TOD) 동영상도 끝까지 “없다”고 우기다 언론에 일부 공개되자 그제야 “있다”고 말을 바꿨다. 당시 군은 여론으로부터 우왕좌왕 지휘체계와 허술한 보고체계 등의 문제를 ‘그로기 상태’가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그렇게 2년 반이 지났지만 ‘노크 귀순’ 앞에서 또 같은 행태를 보인 것이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