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이순신-(16) 소통] 운주당에서 마음을 열다
입력 2012-10-19 18:20
토론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소통 과정이다. 셰익스피어는 위대한 논쟁 없이는 감동도 없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참여와 소통이 이뤄지는 토론은 한 개인의 지혜를 넘어 미국의 곤충학자인 윌리엄 휠러 하버드대 교수가 말한 집단지성을 낳는다. 최근 열풍이 불고 있는 TED도 한 사람의 천재보다 보통 사람들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모아 인류가 처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집단지성운동이다.
이순신은 분명 탁월한 영웅이다. 그러나 거북선을 창제하고,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집단지성이었다. 그는 오늘날 유행하는 집단지성을 몸소, 또 겸손하게 실천했다. 그 증거가 바로 이순신의 서재와 같은 한산도 운주당(運籌堂)이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대부분 자신의 서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에서 묻힌 먼지를 닦아내는 씻김의 공간이었다. 또 제자를 기르고, 벗과 어울리며 지혜를 나누고 겨루는 집단지성의 산실이었다. 때문에 서재의 이름은 서재 주인이 추구하는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 유배됐을 때 머문 곳의 이름을 삼사재(三斯齋)라고 지었다. “거칠고 태만함을 멀리하며(斯遠暴漫), 비루하고 패려함을 멀리하며(斯遠鄙倍), 진실을 가깝게 한다(斯近信)”는 뜻이었다. 올곧은 정약용이 추구한 삶을 보여준다.
이순신의 운주당도 그가 추구한 목표를 보여준다. 운주는 본래 한나라 창업자 유방이 천재 전략가 장량의 공로를 표현할 때 쓴 말에서 유래했다. 즉 장량이 ‘군영 막사 안에서 계책을 짜내(運籌策?帳之中·운주책유장지중)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선비 정약용과 달리 장수 이순신은 장량처럼 승리의 비책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꿈꾸었다. 이순신은 운주당에서 지내며 밤낮없이 장수들과 군사 일을 토론했고, 말단 병졸들에게도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운주당에서 승리 계책을 만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군사와 백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으는 집단지성의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운주당을 회의실로도 볼 수 있지만, 경청하는 사람이라면 술자리든 회식자리든 모든 곳이 운주당이 될 수 있다. 귀와 마음을 열어 자신의 마음부터 운주당으로 만들라. 후회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박종평(역사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