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칼럼] 개념시대의 공공재 DNA 회복을 위하여

입력 2012-10-19 17:42


현 시대를 흔히 ‘개념시대’라고 한다. 한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따라 ‘개념인’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순식간에 ‘개똥녀’나 ‘신문남’(지하철에서 신문 펴고 민폐 끼치는 남자)이 되기도 한다. 이리하여 ‘개념 있는 사람’은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개념 없는 인간’은 최고의 욕이 되었다. 개념이 이렇게 삶에 있어서 중요하게 된 것은 사이버 공간을 통하여 온 세상이 하나로 통합되고, 가치의 보편화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개념과 행동은 영혼과 육체처럼 서로 뗄 수 없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한 사람이나 공동체는 핵심 개념을 행동으로 구현하고, 또한 행동으로 개념을 드러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개념 시대의 중심에 살고 있는 한국교회는 최근 들어 불행하게도 개념 상실 사건들을 범국가·교단적으로 잇달아 연출하면서 ‘개념 없는 종교’로 매서운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한국의 대표적인 장로교 교단 총회에서는 총회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개회예배를 마친 직후 교단을 대표하는 총무가 총대들과 하늘(?)을 향하여 총을 겨누는 어이없는 서부 활극을 펼쳤다. 그 총회의 첫날에는 용역이 동원되었고, 마지막은 갑작스런 폐회 선언으로 ‘불 꺼진 총회’로 막을 내려 참석자들과 한국교회 전체에 깊은 상처를 주었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대형교회 세습을 회개한 목사님을 원로목사로 모셨던 어느 교회에서 그 목사님이 소천한 기간에 아들에게 교회를 넘기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연출한 사건이었다. 한국기독교는 어쩌다가 이렇게 개념 없는 종교가 되었는가.

물론 이것은 단지 한국교회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2009)를 쓴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2012)이란 새 책에서 이런 현상을 전통적인 시장경제체제에서 시장사회로 변모해 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가 볼 때 시장경제는 시장의 다양한 활동을 조정하는 도구로 건강하게 사용되었지만, 시장사회는 거의 모든 것을 거래의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즉, 시장사회에서는 인류의 오랜 세월 동안 돈으로 살 수 없었던 종교까지도 모두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가 변해도 마음은 변하지 않는 선한 목회자들이 참으로 많은 데도, 가끔 사역의 초기에는 그렇게도 순수하게 헌신했던 분들이 노년이 되어 영안이 어두워지면서 가족들에게 마음을 납치당해 버리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하여 오리 브래프먼과 롬 브래프먼이 공저한 ‘스웨이’(Sway, 2009)라는 책에는 매우 흥미로운 설명이 나온다.

즉, 인간의 신경중추에는 ‘쾌락중추’와 ‘이타중추’가 있어 기쁨을 주는데 이 두 중추는 동시에 움직일 수 없는 두 개의 엔진과 같다. 따라서 순수한 헌신을 할 때는 이타중추가 작용하여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청지기로 살게 된다. 그러다가 점점 물질적인 보상에 익숙해지면 쾌락중추가 이타중추를 억압하다가 점점 강해져서 결국 이타중추를 마비시키며, 결국 본능적인 이기심이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neurological kidnapping)고 한다.

현재 한국교회는 많은 영역에서 사유화 작업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교회는 물론이고, 기독교 학교, 병원, 고아원과 보육원, 성경과 찬송가, 선교기관 등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유재(私有財)로 변질되고 있다. 100년 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기독교 신앙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문명사적 전환을 꿈꾸었고, 죽을힘을 다하여 믿음의 모든 유산을 공공재(公共財)로 만들었다. 한국 최초의 병원인 광혜원을 맡았던 올리버 에이비슨은 “조선 의료계의 장래는 외국 선교사들의 일대에 걸친 봉사가 아니라 조선인의 자립적인 의료재 생산체제 구축에 의하여 열릴 것이다”며 제자들을 독려하였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공공재 DNA가 강한 공동체를 형성하여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 이제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공공재를 아무 조건 없이 온 세상에 나누기 위하여 ‘개혁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는 종교개혁의 모토를 앞장서서 실천해 가야 할 것이다.

(총신대 교수·한국신학정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