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자영업자 83만명 눈물의 폐업… “내일, 좋아질 거라는 희망조차 없어”
입력 2012-10-18 19:06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18일 통계청과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4월 한 달 동안 자영업자는 12만7000명이 늘었고, 지난해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는 총 83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하루에도 자영업자 4100명이 쏟아지는 동시에 전국 어딘가에서는 2200여명의 치킨집 주인이, 또 편의점 사장 등이 눈물을 머금고 폐업신고를 하는 셈이다.
서울 망원동 망원시장에서 18년째 속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조태섭(56)씨. 그는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설문조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는 계층이라고 발표한 ‘50대 이상 중졸 이하 남성 자영업자’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배운 것 없어도 장사하기는 편했어. 수입이 괜찮았거든. 아이들 공부시키는 데 어려움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조차 없으니….” 가게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조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의 하루는 오전 7시에 시작된다. 아침식사 후 아내와 함께 나와 가게 문을 연다. 82㎡ 가량의 점포에 종업원 한 명을 두고 있다. 가게에 나오면 조씨는 아내, 종업원과 함께 재고 정리와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가게 문을 닫는 것은 오후 9시가 넘어서다.
조씨는 “손님이 없다고 가게 문을 열어 놓지 않으면 손님이 더 떨어진다”며 “해마다 경기가 나빠지는 것은 매출 줄어드는 속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2001년과 비교했을 때 2006년까지는 매출이 10%, 2010년까지는 30% 줄었다고 한다.
조씨는 20대 초반에 고향인 경남 합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속옷 회사에 다녔다. 그러다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했다. 과거에 속옷가게는 가정의 달인 5월,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 매출이 높았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장을 찾는 이들이 점점 줄더니 요즘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장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지만 건물 임대료나 운영비 지출이 큰 데다 수입이 불안정하다 보니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다. 조씨는 “이제 자식들이 직장에 들어가고 벌이를 하니까 지출이 좀 줄었지만 그만큼 수입도 줄어서 여유가 없다”며 “요즘 같은 수입이라면 장사를 해서 애 둘을 대학에 보내는 건 불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주변에 장사를 하다 문 닫은 자영업자가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지난해 2월부터 망원시장 상인회장을 맡고 있는 조씨는 요즘 대형마트가 인근에 들어서는 문제로 부쩍 일이 많아졌다. 요즘은 베이비부머 퇴직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자영업이 포화상태가 됐다.
그는 “예전에는 시장에 품목당 점포가 한 개 있었는데 요즘은 대여섯 개가 있다”고 말했다. 장사가 안 될게 뻔해 최소한 서너 곳은 문을 닫을 운명이라는 것이다.
조씨는 자영업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에서 낮은 이자로 미소금융 상품을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라고 하지만 생색내기일 뿐”이라며 “자영업자들은 큰돈이 급하게 필요해 빚을 내는데 미소금융은 액수가 적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이 자영업자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는다고 하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썰렁한 가게에 앉아 있던 조씨는 모처럼 손님이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