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교수가 올린 ‘성기’ 사진은 음란물 아니다”

입력 2012-10-18 22:16


남성 성기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표현의 자유’ 논란에 불을 붙였던 박경신(41)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박 교수는 “사법부의 승리”라며 판결을 반겼고, 박 교수를 고발했던 시민단체는 “황당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기정)는 18일 음란물 유포죄로 기소된 박 교수에 대해 “게시된 성기사진을 음란물로 볼 수는 없다”며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인 박 교수는 지난해 7월 자신의 블로그에 방심위가 음란물로 판정한 남성 성기 사진 7장과 벌거벗은 남성의 뒷모습 사진 1장을 올렸다. 방심위의 판정에 대한 의도적인 문제제기였다. 앞서 방심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문제의 사진들을 음란물로 판정했으며, 당시 심의위원 9명 중 박 교수 등 3명이 음란물 판정에 반대했다.

박 교수는 사진과 함께 “일일이 표현물이 옳으냐 그르냐를 묻는 것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는 모든 표현의 자유이지 ‘사회적으로 좋은 표현을 할 자유’가 아니다”라는 글을 함께 올렸다. 사진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자, 박 교수는 여성의 성기를 그린 구스타프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이라는 작품을 블로그에 추가로 올렸다.

결국 건전미디어 시민연대는 박 교수를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 서부지법은 지난 7월 “우리 사회 평균으로 볼 때 음란물로 보기에 충분하다”며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박 교수가 블로그에 올린 게시물을 보면, 게시자가 표현하고자 한 핵심내용은 성기사진이 아니라 그 아래 쓴 글에 있음을 일반 보통인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다”며 “글이 완결된 논리나 체계를 갖춘 학술보고서라고는 볼 수 없지만, 사회적 이슈인 표현에 자유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표현한 것이므로 사상적·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항소심 무죄 판단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의 행위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국가가 음란물에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논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음란물에 대한 판단기준이 애매해지면서 이번 판결이 인터넷상 음란물 게시의 기준을 완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 교수는 재판 후 “자신의 꿈을 담은 블로그들이 아무런 통지도 없이 폐쇄되는 경우들을 많이 봤다”며 “우주과학자를 꿈꾸는 초등학생이 추진체를 만드는 실험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이를 폭발물 관련 영상이라며 폐쇄해버리는 현실이 제대로 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박 교수는 “앞으로 방심위 심의 활동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건전미디어 시민연대의 박승진 대표는 “성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진을 음란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이 음란물인지 모르겠다”며 “음란물이 인터넷상에서 아무런 제지 없이 나돌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할 방침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