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마지막 나날… 굶주림속 폐가 전전 도피, 절박감에 포위 뚫다 발각
입력 2012-10-18 18:40
40여년의 철권통치 끝에 지난해 살해된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최후의 순간은 어땠을까.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카다피 사망 1주년(10월 20일)을 맞아 카다피의 도피 행적을 담은 보고서를 18일 발표했다. 그의 경호원 및 반군 지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엮은 것이다. 호화스러웠던 그였지만 마지막 삶은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2011년 8월 28일 카다피는 아들 무타심과 함께 트리폴리를 탈출했다. 목적지는 고향인 지중해 연안의 시르테였다. 하지만 시르테를 포위한 반군의 공세는 점점 치열해졌다. 카다피 일행은 폐가를 비집고 다니면서 도심 외곽으로 피신했다. 4∼5일마다 거처를 옮겼고, 이동 시 차량은 한두 대만 사용했다. 외부와의 통신은 두절됐고 TV도 없었다. 카다피 일행은 빵 조각을 훔치는 신세로 전락했다. 시가전으로 물탱크가 파괴돼 물도 구하기 어려웠다.
카다피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왜 전기가 없지? 물은 왜 없어?”라고 다그쳤다. 당시 경호원들은 특히 카다피가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한 통신장비가 없다는 것에 무척 분개했다고 전했다. 한 경호원은 “마지막 몇 주간 카다피는 코란을 읽고 기도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결국 아들 무타심은 반군 포위망을 뚫자고 건의했다. 카다피 일행은 픽업트럭 50대에 남아 있던 주민과 부상자들을 태웠다. 기관총, 방공포도 탑재했다. 작전 개시 시간은 10월 20일 새벽 3시30분이었다. 그러나 준비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오전 8시 준비가 끝났을 때 반군들은 이미 제 위치로 돌아와 있었다.
카다피는 왜 당초 계획대로 밀고 나갔을까. 그만큼 절박했을 것이라고 HRW는 전했다. 차량들은 곧 발각됐고 로켓포 공격이 이어졌다. 특히 헬멧과 방탄조끼 차림의 카다피는 반군의 눈에 바로 띄었다. 그가 뛰어든 빈 건물엔 포격이 이어졌다. 경호원이 맞서 던진 수류탄 여러개 중 하나는 벽을 맞고 튕겼고 경호원이 덮치려는 순간 폭발했다. 카다피는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반군은 카다피를 둘러싼 채 구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흉기로 엉덩이를 찔렀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반군 지도자는 “그를 재판에 세워야 했지만 모두를 통제할 순 없었다. 통제 불능 상태였다”고 말했다. 거의 발가벗겨진 카다피 시신이 구급차에 실렸고 몇 시간 뒤 그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