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인간으로 길러진 님 침스키, 과연 말을 했을까

입력 2012-10-18 18:21


님 침스키/엘리자베스 헤스/백년후

1973년 미국 뉴욕의 한 중산층 가정에 아기가 입양됐다. 이름은 님 침스키. 태어난 지 2주 만에 이 집에 온 아기는 침팬지다. 하지만 진짜 아기처럼 보이고 행동하고 느꼈다. 놀랍게도, 님은 전혀 까다롭게 굴지 않고, 인간의 가정에 쉽게 적응했다. 젖병을 열심히 빨았고, 등을 몇 차례 두드려주면 만족스럽게 트림하기까지 했다. 안아주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으면 울었다.

인간이 침팬지를 입양해 키우는 이 기상천외한 일은 1970년대 미국 인지과학계에서 진행된 ‘님 프로젝트’, 즉 유인원언어연구의 일환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프로젝트는 컬럼비아대학 심리학과 허버트 S. 테라스 교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 동물이 말을 배운다?… 촘스키에 도전장

침팬지는 인간과 대단히 가까운 동물이다. DNA의 98.7%가 일치한다. 침팬지라는 이름도 콩고민주공화국의 토속어에서 ‘가짜 인간’을 뜻하는 ‘키빌리 침펜제’에서 유래한다. 테라스 교수는 이런 침팬지가 미국식 수화를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침팬지를 일반 가정에서 키우고 언어를 가르치는 실험을 한 것이다. 성공한다면 언어학계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언어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 챘을 것이다. 동물에게 언어를 학습시키겠다는 이 발상은 ‘언어 능력은 인간에게만 내재된 것’이라는 언어학계 거두 노암 촘스키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촘스키는 언어학습론을 폈던 행동과학자 B.F. 스키너에게 면박을 주기도 했다. 테라스 교수가 스키너의 제자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스승을 위한 설욕전이기도 하다. 침팬지의 성 침스키는 촘스키에 대한 도전이자 조롱을 담은 것이다.

# 침팬지는 과연 인간의 말을 배웠을까

결과는 어땠을까? 어쩌면 6∼7세 아이의 지능을 가졌고, 인간과 아주 먼 친척처럼 생긴 이 동물과 소통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이 책은 1973년에 태어나 2000년에 죽을 때까지 님 침스키가 지내온 삶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의 옷을 입고, 포크로 사람이 먹는 스파게티를 먹고, 가끔 화장실도 이용하면서 사람처럼 키워진 님은 그러나 아기에서 벗어나는 순간, 말썽꾸러기가 됐다. 커가면서 야생성은 제어하기 힘들어졌고, 결국 세 살 되던 해 자신을 입양했던 라파지 가족과 헤어져야 했다.

이후 님 프로젝트는 뉴욕주 리버데일에 있는 컬럼비아대학 소유의 델라필드 별장에서 이어졌다. 대학원생과 대학생들로 이뤄진 팀원이 새 가족이 됐다. 그들이 님에게 계속 수화를 가르쳤다. 야생성이 발현되면서 공격적 행동이 더 잦아지고 연구비 확보가 난관에 부딪치면서 님 프로젝트는 4년 만에 중단되기에 이른다.

당초 이 프로젝트 목표였던 님의 언어 습득은 어떻게 됐을까?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님이 수화하는 장면을 찍은 비디오나 조련사가 현장에서 수집한 자료는 해석하기에 모호한 구석이 많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님이 출생 2개월 때부터 수화를 배웠지만 다른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그저 조련사의 행동을 흉내 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잘라 말하는 심리언어학자도 있다. “님이 전화를 걸어와 여기서 나가겠다고 요구하면, 그제야 프로젝트가 성공한 것이 아닌가요.”

# 번번이 버림받았던 그의 말로는 어땠을까

저자의 관심은 이런 언어이론 논쟁을 비켜간다. 미국의 동물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프로젝트 중단 이후 님의 생애를 추적한다. 뉴욕 맨해튼의 우아한 저택에서 인간처럼 살았던 님은 이후 20년 동안 사랑했던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으면서 우리에 갇혀 이 시설, 저 시설로 떠돌아 다녔다.

그 가운데는 생체의학연구실험실도 있었다. 저자는 님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님을 입양했던 뉴욕의 가족, 수화 교육을 도왔던 자원봉사자, 님이 말년을 보냈던 시설의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추적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연구용 동물은 대체로 사라지거나 그 과정이 은폐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님은 어디를 가든 수화 능력, 특유의 친화력 덕분에 살아남은 것으로 밝혀졌다. 자신에게 닥친 여러 장애를 극복하고 마지막엔 보호소에 안착한 것이다. 하지만 간단치 않은 삶 탓인지 2000년 스물일곱의 짧은 생애(침팬지 평균 수명은 50세)를 마감하고야 만다.

인간을 닮았기에 겪어야 했던 침팬지 님 침스키의 일생은 인간이 동물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그러기에 책장을 덮고 나면 숙연해진다. 장호연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