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장편소설 ‘물의 연인들’… 인간과 교감하는 江의 생태 “잃어버린 모든건 물위에… ”

입력 2012-10-18 18:11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우(42)의 세 번째 장편 ‘물의 연인들’(민음사)의 중심을 흐르는 것은 와이강이다. 와이강 유역에서 태어나 자란 유경과 그녀의 어머니 한지숙, 그리고 와이강 근처에서 발견된 후 스웨덴에 입양돼 자라난 유경의 연인 연우 등 와이강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생명과 인연의 젖줄이다. 한마디로 등장인물들은 와이강의 자장 안에 있다. 소설은 강이 죽어 가면 사람들도 죽어간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와이강의 사랑과 비극에 초점을 맞춘다.

광기어린 폭력을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한 한지숙은 출소를 얼마 앞두고 깨진 칫솔 조각을 삼킨 채 숨을 거둔다. 유경은 어머니의 유골함을 들고 스웨덴 스톡홀름 행 비행기를 탄다. 평소 북유럽에 가보고 싶다는 어머니의 꿈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그곳에서 유경은 연우를 만나 불같은 사랑을 나눈다. 사랑의 연결고리 또한 와이강이다.

“왜 내가 와이 강가에서 발견되었는지 나도 궁금해. 확실한 건 내가 그 강물을 기억한다는 거야. 그날의 강… 그날의 강물을… 그날의 강물은 정말이지 왜 그렇게 반짝였는지. 울고 있는 나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49쪽)

유경은 연우와 함께 귀국해 와이읍 여름학교를 개설하고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연우는 다시 스웨덴으로 떠나간 몇 년 뒤 숨을 거둔다. 유경은 그 충격으로 연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불보다 뜨거웠던 사랑만큼은 몸에 새겨져 있다. “너는 내 몸 모든 곳에 각인된 타투. 이것은 질기고 끔찍한 감옥. 이토록 이상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나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너를 만난 4년이 한순간의 꽃처럼 피었다 졌다.”(14쪽)

유경은 어느 날 와이읍에 사는 수린과 해울로부터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와 와이강의 물이 든 유리병을 소포로 받는다. 수린과 해울은 여름학교 출신의 친남매 같은 아이들이다. 와이강의 생태계가 공사로 인해 점차 파괴되고 있는 것처럼 수린 역시 온몸이 각질화된 채 뻣뻣하게 굳으며 죽어가고 있다. 수린을 사랑하는 해울은 강과 자연이 살아나면 수린도 회복될 수 있다고 믿으며 사제 폭탄으로 공사현장을 폭파하기에 이른다. 그 귀결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해울은 소년교도소로 보내지고 수린의 병은 더 깊어진다.

그렇더라도 작가의 시선은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와이강은 와이읍 사람들의 비극을 물 위에 띄우며 흘러간다는 그 지점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은 물위에 떠 있다는 결론이야말로 모든 것을 잃은 후 그 폐허에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유경의 존재 방식이자 김선우 자신의 존재 방식이기도 하다. 강은 인간과 연결돼 있으며, 하나의 물방울에 불과한 우리 모두는 강을 통해 더없이 강력한 인연으로 맺어지고 있다는 에코페미니즘이야말로 김선우 소설의 바탕이 되고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