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왕성한 팔순 고은… 詩作 55년 망라 대표작 240편 선정 ‘마치 잔칫날처럼’ 출간
입력 2012-10-18 18:11
고은 시인의 팔순에 즈음해 그가 55년 동안 발표한 시 가운데 240편을 가려 뽑은 시선집 ‘마치 잔칫날처럼’(창비)이 나왔다.
이시영 김승희 안도현 고형렬 박성우 등 시인 5명이 최초 발표작인 ‘폐결핵’에서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시를 고르고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종적으로 수록작을 낙점했다.
이 가운데 149편은 2002년 칠순을 맞아 낸 시선집 ‘어느 바람’에서 옮겨왔고 ‘어느 바람’ 이전의 시 50여 편과 이후 시 30여 편이 추가됐다. 추가 시편 가운데 백 교수가 각별히 언급한 시는 고은이 경기도 안성 자택에서 키우는 개를 형상화한 ‘달래 4대’이다.
“내가 사람이고/ 달래가 개인 것/ 이것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그래서 앞으로 한 십년쯤/ 내가 달래가 되고/ 달래가 고은이 되는 꿈을 와장창 꾼다// (중략)// 허나 달래는/ 추호도 고은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꼬리 친다/ 이런 달래의 삶 속에 들어가고 싶은 것/ 어림없구나”(‘달래 4대’ 부분)
마지막 두 연에 주목한 백 교수는 “익살 섞인 인정이 갑자기 길어진 시행을 통해 각인됨으로써 얼핏 단정적으로 보이는 짧은 한 줄짜리 마지막 연 ‘어림없구나’에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실리는 것”이라고 ‘편집 후기’에 썼다.
백 교수에 따르면 고은은 정지용 백석 김수영 신동엽 같은 애석한 이름들과 구별된다. 또 장수와 다작의 시인으로 곧잘 칭송되는 미당 서정주를 쉽게 넘어선다. “실제로 서정주의 경우, 여든 살이 넘도록 현역 시인으로 남았던 점은 장한 일이나 ‘떠돌이의 시’(1976)와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1982) 중 일부를 빼고 환갑 지난 뒤의 창작은 대부분 긴장이 풀린 ‘관광객’의 기록이나 객담에 가까운 것들이다.”
이에 비해 고은은 여든이 가깝도록 훌륭한 작품을 풍성한 분량으로 써내는 대시인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미당은 가고 없지만 고은은 살아 있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고은은 ’시인의 말’에 “시의 55년을 앞두고 있다. 나에게는 오로지 현재가 내 꿈의 장소이다. 허나 현재란, 꿈이란 얼마나 천년의 가설인가”라고 썼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