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손병호] 박근혜·문재인·안철수와 언론
입력 2012-10-18 18:34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지난 8월 22일 국회 기자실을 찾았다. 기자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유머를 던졌다. 휴대전화 벨소리에까지 관심을 나타냈다. 무소속 안철수 대통령 후보를 담당하는 기자의 “안 후보보다 박 후보 손을 먼저 잡게 됐다”는 말에 까르르 웃었다. 몇 년 전 테러를 당한 얼굴 부위 흉터가 선명하다고 하자 금세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평생 가는거죠. 뭐”라고 했다.
박 후보는 이전까지 기자들에게 ‘한 마디’ 정치인이었다. 이슈가 터지면 인터뷰나 전화 취재가 안돼 국회 회의장에 들어서는 그를 쫄쫄쫄 쫓아다녀야 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한두 마디 반응을 얻어냈다. 30분을 기다려 ‘할 말이 없다’는 답을 듣는 경우도 많았다. 언론이 다가가기 어려운 정치인이었고, 권위주의적인 취재원이었다. 그랬던 박 후보가 기자들과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잘생겼다’고 덕담을 건네고, 진보매체 기자에게 “(자신을 비판한) 칼럼이 너무 날카로웠어요”라고 엄살을 부렸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옆집 아줌마가 수다 떠는 것 같은 모습에서 드러나는 ‘여장부의 이면’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대표적인 ‘프레스 프렌들리’(언론친화적)한 취재원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도 보좌진을 안 거치고 기자들의 전화를 직접 받았다. 대선 후보들이 그렇게 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그는 지난해 기자와 한참동안 통화하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지금 운전 중이거든요. 나중에 전화드리겠다”고 할 정도로 취재에 적극 협조해 왔다. 그는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나서도 “참여정부 때는 언론과 불편했지만 저는 그렇게 안 하려고 한다”고 호의적 언론관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런 문 후보도 몇몇 언론사와는 아주 냉랭한 관계에 있다. 그는 “한 군데 가기 시작하면 다른 언론사 행사에 안 갈 수 없다”며 언론사가 초청하는 행사에 불참해 눈총을 받고 있다. 또 보수 언론이 소유한 종합편성채널은 일절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민의에 반해 이명박 정부가 ‘날치기’로 통과시킨 법으로 탄생된 매체라는 이유에서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1개월 전까지도 언론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그는 안랩(구 안철수연구소) 직원을 시켜 대신 전화를 걸어와 “특정 언론사 취재에 응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양해를 구해 오곤 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반발하자 4개월 전부터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을 ‘대변인 격(格)’으로 임명해 간접적으로 답해 왔다. 최근에는 캠프 인사들이 기자들이 취재한 내용을 사전에 수정하려 해서 충돌을 빚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최근 들어 확연히 달라졌다. 취재와 무관한데도 자신의 담당 기자들 결혼식에 두 차례 참석했다. 또 기자들의 개인 면면을 미리 파악하고는 “어, 제 흉내를 잘 내는 기자분이시죠”라고 먼저 말을 거는 등 적극적인 스킨십에 나서고 있다. 형식적 질의응답에 그친 다른 후보들의 출마선언 때와 달리 지난달 19일 출마회견장에서 즉석질문을 15개나 받아 성실히 답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기자들은 후보들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없는 국민들을 대신해 질문을 던진다. 또 후보의 인간적인 면을 들여다보려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묻는다. 후보의 임기응변을 엿보려고 종종 ‘갑작스런’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후보들이야 힘든 일이지만, 그에 성의 있게 답하는 게 맞다. 그게 유권자들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손병호 정치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