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남표 퇴진해도 KAIST 개혁 계속돼야 한다
입력 2012-10-18 18:33
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내년 3월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그의 거취를 놓고 오랫동안 지속되던 KAIST 안팎의 분란은 잦아들게 됐다. 하지만 KAIST를 세계적 대학의 반열에 올려놓기 위한 개혁마저 서 총장의 퇴진과 함께 매장당해서는 안 된다.
당초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석좌교수였던 서 총장을 영입한 것은 개혁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자연과학계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해 1971년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KAIST의 성과가 지지부진하자 보수적인 대학 기풍을 일신하기 위해 학맥·인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그가 선택된 것이다.
서 총장은 2006년 7월 부임한 뒤 “KAIST를 세계 최고 대학으로 만들겠다”며 개혁을 시작했다. 세금으로 전액 면제해주던 등록금을 성적에 따라 차등 납부토록 하는 징벌적 제도로 대체했고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했다. 교수 정년보장 심사도 강화해 40여명을 내보냈다. 이런 결과 2006년 198위였던 KAIST의 세계 대학 순위는 올해 63위로 도약했다. 서남표식 개혁은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고, 서 총장은 ‘대학 개혁의 전도사’로 불렸다.
하지만 불도저식 개혁은 부작용과 반발을 불렀다. 경쟁 체제에 치중해 학내 갈등이 심화됐고 지난해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자살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교수들은 두 차례 투표에서 서 총장을 불신임했고 총학생회도 퇴진을 요구했다. 개혁에는 어느 정도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서 총장은 소통의 부족으로 불필요한 저항을 자초했다. 이는 대학 발전을 위해 응집돼야 할 역량의 분산을 초래했고 개혁에 오히려 장애가 됐다. 경쟁만능주의는 낙오 스트레스를 가중시켰고, 학생들을 학점에 매달리게 함으로써 창의성을 저해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렇다고 개혁이 중단돼서는 안 된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인 우리나라 대학들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웃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19명이나 배출하고 이중 16명이 물리·화학·의학 등 이공계 분야지만 우리는 하나도 없다. KAIST가 국가 과학기술의 요람으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개혁과 혁신을 해야 한다. KAIST가 롤모델 역할을 해 다른 대학들의 변화도 이끌어내야 한다.
KAIST는 내년 1월 총장후보선임위원회를 구성해 후임자를 뽑게 된다. 차기 총장의 첫 번째 과제도 당연히 개혁이 돼야 한다. 로버트 러플린 총장에 이어 서 총장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전례를 감안할 때 폭넓은 소통의 리더십도 동시에 요구된다. 전임자를 넘어서는 비전을 갖추고 대학을 단합시켜 개혁으로 이끌고 갈 적임자를 찾는 게 KAIST와 우리 과학계의 당면 과제다. 개혁은 쓰라려도 묵묵히 걸어가야 할 길이다.